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16일 미국 주도 반도체 동맹인 ‘칩4(한국·미국·일본·대만)’에 대해 “배제할 필요가 없고 참여해서 우리 이해를 충분히 반영해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칩4 참여 의사를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장관은 이날 한국경제신문사와 현대경제연구원 주최로 서울 반얀트리호텔에서 열린 한경 밀레니엄포럼에서 “반도체산업은 정말 놓칠 수 없고 그런 차원에서 칩4를 생각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러면서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대만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미국은 장비 기술, 일본은 소재·부품에 강점이 있다”며 “역할 분담이 잘된 넷이 앉으면 반도체 공급망을 상당히 강화해나갈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고 했다. 칩4에서 다뤄질 주제와 관련해서는 “인력 양성, 기술 개발 협력, 정보 교환 방안 등을 놓고 관련국 사이에 물밑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며 “개별 국가에 방해되지 않도록 디자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장관의 이날 발언은 칩4 참여 의사를 밝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칩4 참여를 요청받았지만 그동안 중국의 반발을 의식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이에 따라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하지만 반도체 설계는 미국이, 장비는 일본 네덜란드 등 미국의 우방국이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칩4 참여는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많았다. 한국은 반도체 생산에서 경쟁력이 있지만 설계와 장비 부문에서는 경쟁력이 떨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주도의 칩4에 참여하지 않으면 한국의 반도체산업 발전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의 대중 반도체 규제는 점점 강해지고 있다. 정부의 칩4 참여 방침도 이런 점을 감안한 조치로 분석된다. 다만 정부는 중국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칩4가 ‘개별 국가’를 겨냥하지 않고 있다고 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이지훈/김소현 기자 li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