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버스가 완전히 정차하면 일어나주세요."버스가 완전히 멈추면 하차를 준비해달라는 기사의 요청을 무시하고 일어난 한 승객이 결국 골절상을 입은 가운데, 해당 승객이 기사에게 치료비를 요구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다.
최근 교통사고 전문 한문철 변호사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한문철 TV'에는 '이게 버스 기사 잘못이라면 앞으로 어디 아플 때 버스 타고 넘어져서 치료비 받아야 할까요?'라는 제목의 영상이 올라왔다.
영상의 제보자이자 사연 속 버스 기사인 A씨가 제보한 영상에 따르면 그는 지난달 16일 오후 1시께 부산광역시 남구에서 버스를 운행하던 중 정차 전 하차 벨을 누르고 일어나는 승객 B씨에게 "버스가 완전히 멈추면 일어나달라"고 두 차례 안내했다. 그러나 B씨는 이를 무시한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B씨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도 한 손으론 휴대폰을 들고 통화하고 있었으며, 더욱이 다른 한 손으로는 바퀴가 달린 수레를 잡고 있었다. 이후 B씨는 한 발을 내딛자마자 발을 접질리며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지고 말았다. A씨는 "(B씨가) 골절상을 입었다면서 병원에 입원했고, 치료비를 달라더라"며 "다른 승객이 진술해준다면서 연락처도 주고 간 상황"이라고 했다.
이후 인근 경찰서로 가 버스 내부 블랙박스 영상을 제출하고 진술서를 작성한 A씨는 경찰로부터 일단 "기사의 과실이 없어 보인다", "B씨가 혼자 넘어진 것 같다"는 말을 들었지만, B씨 측 보호자는 버스 회사로 연락해 재차 치료비를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실시간 방송에서 진행된 시청자 투표에서는 A 씨에게 '잘못이 없다'는 의견이 49명(98%), '잘못이 있다'는 응답이 1명(2%)으로 나타났다.
한문철 변호사는 "승객이 꾸벅꾸벅 앉아서 졸다가 쓰러져서 다치면 버스 잘못이냐. 졸다가 넘어지면 버스 잘못이냐. 버스에 타고 있던 사람이 다치면 무조건 버스 잘못이냐. 아니지 않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막말로, 어디 좀 불편하고 그럴 때, 요양병원에 좀 눕고 싶으면 버스 탔다가 넘어지면 되는 거냐"고 반문했다.
한 변호사는 "이 상황에 버스 기사에게 잘못이 있다면 이상한 것 아닌가. 버스가 대체 뭘 잘못했냐"고 평가했다. 그는 "버스 기사에 잘못이 없어야 옳겠다. 다치신 분은 건강보험이나 출퇴근 중 사고였으면 산재로 보상받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한 변호사는 최근 '승객의 부상이 고의가 아니라면 운전상 과실 유무와 상관없이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취지의 대법원판결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얼마 전 이상한 대법원판결이 있었는데, 저는 그 판결이 매우 잘못됐다고 생각한다"며 "급출발, 급제동, 급회전, 개문발차 등 운행으로 말미암은 사고가 아니라면 버스에 잘못이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변호사가 언급한 '이상한 대법원 판결'은 지난해 11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전국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를 상대로 제기한 구상금 청구 소송에서 대법원이 원고 패소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법원으로 돌려보낸 판결로 보인다. 당시 대법원은 버스 안에서 넘어져 다친 승객의 고의성이 입증되지 않는 한 버스회사에 배상 책임이 있다는 내용을 골자로 판결을 내렸다.
법조계에 따르면 2017년 7월 버스 좌석에서 일어나 가방을 메던 중 정차하는 버스의 반동으로 허리를 다친 승객 C씨는 이 사고로 인해 총 113만원의 진료비가 발생했고, 본인부담금 16만원을 제외한 나머지 97만원은 건보공단이 한방병원에 지급했다. 이후 건보공단은 "버스 기사가 업무상 주의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며 구상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1·2심 재판부 모두 건보공단의 청구를 기각했다. 버스 내부 블랙박스 영상을 보면 C씨는 버스가 멈추기 전부터 자리에서 일어나 손잡이도 잡지 않았고 가방을 메던 중 발생한 사고이므로, 기사에게 과실이 없다는 판단이었다. 2심 재판부는 "피해자(C씨)의 전적인 과실로 발생했다고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이 판결은 대법원에서 뒤집혔다. 대법원은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은 자동차 사고로 승객이 부상한 경우 승객의 부상이 고의임을 증명하지 못하는 한 운전상 과실 유무를 가릴 것 없이 승객 부상에 따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보고 있다"며 "이번 사고가 C씨의 고의로 인한 것임이 증명됐다고 보기 부족하므로 부상에 따른 손해에 대해 전국버스운송조합 등의 책임이 면제됐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