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경영 환경은 정말 ‘안갯속’입니다. 내년까지만 그러면 다행이지요. 이젠 생존 경쟁입니다.”
대기업 고위 관계자는 8일 내년 경영 전망을 묻자 이렇게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국내 1위 기업인 삼성전자마저 ‘비상경영’을 선언한 건 예삿일이 아니라고 했다. 주요 대기업도 이 같은 ‘위기 신호’를 감지하고 대응책 마련에 분주한 것으로 전해졌다.
주요 그룹이 ‘2023년 사장단 정기인사’에서 조직 안정에 무게를 두고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를 대부분 유임한 것은 이 같은 위기 상황을 감안한 것으로 분석된다. 시장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선 급격한 변화보다 경쟁력 유지 및 핵심 역량 확보가 우선이라는 전언이다.
이번 인사에서 그룹 내 ‘재무통’에게 요직을 맡겨 유동성 리스크에 대비한 것도 특징적인 모습으로 꼽힌다. LG화학 최고재무책임자(CFO) 겸 최고위기관리책임자(CRO)인 차동석 부사장은 사장으로 승진했다. SK㈜도 이성형 CFO를 사장으로 승진시키며 CFO 역할을 강화했다.
삼성전자 DX(디바이스경험)부문에 앞서 LG·포스코·한화·현대중공업그룹 등도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LG전자는 지난달부터 워룸(War-room·전시작전상황실)을 가동하고 있다. 내년 경영 환경이 더 악화될 것으로 보고, 각 사업부와 본사 핵심 직원을 모아 경영 현황 점검 및 대책 수립에 나선 것이다. 포스코는 지난 9월부터 주요 계열사 CFO들이 2주에 한 번 모여 비상경영대응팀 회의를 열고 있다. 현대자동차, SK하이닉스 등은 최근 내년 투자 축소 방침을 공식화했다.
산업계 비상경영이 확산할 조짐을 보이는 건 내년 경기침체가 본격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수출과 민간 소비 침체로 내년 국내 경제성장률이 1%대로 가라앉을 것으로 내다봤다. 기업 투자 감소, 실업 증가 등 연쇄 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추광호 한경연 경제정책실장은 “내년엔 수출과 내수가 동시에 얼어붙는 극심한 침체 국면에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올해 급격한 금리 인상 여파는 내년 초 본격 나타날 전망이다. 경영 실적이 내년에는 더 고꾸라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산업계 관계자는 “각 기업은 일단 버티면서 미래 준비를 하는 데 방점을 찍는 분위기”라며 “경비를 절감하는 등 비용 효율화를 추진하는 기업도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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