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국 기업의 수출액이 사상 최대치인 6900억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극복하고 이룬 성과로 수출 규모 기준으로 세계 5위에 해당한다.
올해 수출액 7000억달러 육박
한국무역협회(회장 구자열·사진) 국제무역통상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한국 수출은 6900억달러로 예상된다. 지난해 수출은 6444억달러였다. 한국의 수출은 2018년 6049억달러로 6000억달러를 처음 넘겼다가 2020년까지 5000억달러대로 주저앉았었다.올해 글로벌 경제 환경은 최악이었다. 최대 수출국인 중국이 코로나19를 이유로 도시를 봉쇄했다. 올초 터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미국은 빠른 속도로 기준금리를 올리고 있다. 어려운 여건 속에 수출액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는 것은 그만큼 우리 기업의 기초체력이 탄탄하다는 뜻이다.
전년 대비 수출이 12.2% 늘어난 한국처럼 두 자릿수 성장률을 보인 국가가 거의 없다. 일본은 3분기까지 수출액이 작년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홍콩과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등도 수출이 제자리걸음을 하는 모습이다.
한국의 수출액은 중국과 미국, 독일, 네덜란드, 일본 등에 이어 세계 6위다. 중계무역이 대부분인 네덜란드를 제외하면 사실상 ‘세계 수출 5대 강국’에 오른 셈이다. 한 계단 위인 일본과의 격차도 크지 않다. 지난 3분기까지 한국의 수출액은 5247억달러로 5585억달러를 기록한 일본을 300억달러 차이로 바짝 뒤쫓고 있다. 한국이 오랫동안 경제대국으로 군림해 온 일본을 수출로 꺾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신산업이 수출 증가 주도
올해 수출 통계에선 ‘물량’과 ‘단가’ 지표가 모두 개선된 점이 눈에 띈다. 지난해보다 물량은 4.3% 늘었고, 단가는 8.5% 높아졌다. 같은 물량을 팔아도 더 많은 달러를 벌어들였다는 의미다. 자동차와 반도체는 단가가 소폭 하락했지만 수출 물량이 늘었고, 석유제품과 철강제품은 단가 증가율이 더 높았다. 글로벌 경기 회복에 따라 석유제품과 철강 등의 수요가 많아진 영향이다.차세대 반도체, 전기차, 바이오헬스, 에너지, 고품질 디스플레이, 신소재, 항공·우주 등 미래 먹거리 산업의 수출 증가가 전체 수출을 주도하며 한국의 수출이 점차 고부가가치화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정부와 협회 등이 정한 차세대 반도체, 신소재 등 8대 신산업 품목의 올해 수출 증가율은 11.5%로, 전체 수출 증가율(10.8%)보다 높았다. 이 중에서도 전기차와 항공·우주 제품의 올해 수출 증가율은 지난해보다 각각 41.8%, 40.7%에 달할 정도로 급성장하고 있다.
K드라마 K팝 등의 글로벌 한류 열풍으로 소프트웨어 저작권과 문화예술 저작권의 수출도 활발했다. 한국은 지식재산권 수지가 매년 적자를 기록했는데, 올해는 지재권 수지가 흑자로 전환할 게 확실시된다. 연구개발 및 소프트웨어 저작권의 올 상반기 수지는 4억9000만달러, 문화예술 저작권 수지는 3억8000만달러로 집계됐다. 지난 3분기까지 서비스 수출은 1001억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2% 많아졌다.
수출이 대규모 무역적자 막아
올해 한국 수출의 호조에도 무역수지는 약 400억달러 안팎의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인플레이션의 영향으로 석유 등 에너지 가격이 오르면서 관련 제품 수입액이 눈덩이처럼 불었다는 설명이다.지난 10월까지 3대 에너지의 전년 대비 수입 증가율은 △원유 67.9% △천연가스 109.6% △석탄 122.3% 등이다. 이 기간 한국의 무역적자는 원유가 895억달러, 천연가스가 396억달러, 석탄이 239억달러 등으로 집계됐다. 올해 에너지 무역수지는 702억달러 적자로 예상돼 전체 무역적자의 두 배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수출이 선방하며 에너지 수입가격 폭등에도 무역수지 적자는 한국과 사정이 비슷한 주요 제조국가보다 그나마 낫다. 대표적인 제조업 강국으로 꼽히는 독일과 일본의 올 들어 3분기까지 무역적자는 각각 1229억달러, 1117억달러에 달했다. 같은 기간 한국의 무역수지 적자(538억달러)보다 훨씬 많다.
무역협회 관계자는 “기업은 미래 먹거리가 될 신산업 분야에 적극 집중해 경쟁력을 높이고 정부는 통상협력을 넓히는 전략이 주효했다”며 “고부가가치 제품을 다양화하고 수출국가도 다변화해 한국의 수출이 국내 경제의 교두보가 될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