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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신 1등급 못받으면 차라리"…상위권 자퇴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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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송파구에 사는 이모군(17)은 고등학교 2학년 1학기 말이던 지난 7월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의대 진학을 위해서다. 이군은 평가원이나 사설 모의고사에서 꾸준히 국어, 영어, 수학 1등급을 받을 정도로 성적이 좋았다.

문제는 학교 내신 성적. 고등학교 1학년 내신이 평균 2등급대를 기록했는데, 남은 2년 내신에서 모두 1등급을 받아도 수시로 의대에 진학하기 어려웠다. 그는 “어차피 내신은 의대에 갈 정도가 안 되니 학교에서 수능과 무관한 과목을 배우고, 수행평가를 준비하는 시간이 너무 낭비라고 느꼈다”고 했다.

입시를 위해 학교를 자퇴하는 상위권 학생이 늘고 있다. 고교 1, 2학년 때 만족스러운 내신을 받지 못했다며 자퇴 후 정시에 사활을 거는 경우다. 조국 사태 이후 정부가 대입에서 ‘수능만 잘 보면 되는’ 정시 비중을 급격히 늘린 영향이다.

1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따르면 지난달 치러진 2023학년도 수능 지원자 50만8030명 중 검정고시 출신 등 기타 수험생은 1만5488명으로 3.1%를 차지했다. 학령인구 급감으로 전체 수능 지원자는 해가 갈수록 줄고 있지만 검정고시 출신은 오히려 전년 대비 1211명 증가했다. 재수생과 검정고시 출신을 합친 졸업생 비율은 31.1%로, 1997년 수능(33.6%) 이후 26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라섰다.

검정고시 출신 수능 지원자는 2020학년도 수능부터 급격히 증가했다. 이른바 ‘조국 사태’가 터진 이후인 2019년 11월 정부가 입시에서 정시 비중을 대폭 확대하는 방안을 발표한 게 기폭제가 됐다. 그 이전까지 2010년대 검정고시 출신은 꾸준히 1% 후반대를 유지했지만, 정부의 발표 직후인 2020학년도 수능에서 2.27%로 치솟았다.

자퇴생이 늘어난 가장 큰 원인은 입시 제도 변화에 있다. 정부는 2019년 발표한 ‘대입 공정성 강화 방안’에 따라 대입에서 수시 비중을 줄이고, 정시 비중을 늘려왔다.

고등학교 생활 없이 수능만 잘 보면 대입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2018학년도 대입에서 정시 비중은 26% 수준이었으나 2022학년도 입시에서는 16개 주요 대학의 정시 비중이 37.9%로 급증했다. 2023학년도엔 40.5%까지 늘어났다.

이런 대입제도 때문에 내신에서 미끄러진 수험생에겐 자퇴가 합리적인 선택이 되기도 한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고교 내신의 45%가 1학년 때 결정되니 1학년 중간고사만 보고도 내신이 결판난다”며 “학교는 내신 높은 학생 위주로 수시를 관리하는 분위기라 끝까지 학교에 남아 노력하라고 말할 수 없다”고 했다.

교육계에선 급격한 정시 확대로 입시와 고등학교 교육과정 간 괴리가 더욱 심해졌다고 지적한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학교는 지식 이외에도 공동체 생활을 통한 책임감과 공감, 배려를 배우는 곳인데, 수능은 이런 사회·정서적 역량은 배제하고 일부 수학능력만 평가하는 시험”이라며 “오랜 시행착오를 거쳐 정시 비중은 25~30%로 유지됐는데, 이를 급격히 늘리니 다양한 방식으로 학생을 평가할 수 없게 됐다”고 했다.

최예린 기자 rambut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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