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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의 대기업 감시 '사각지대' 100% 활용한 농심 [박동휘의 컨슈머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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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의 농심 재무팀은 다른 어떤 해보다 분주했다. 2008년에 대기업 집단 지정 요건이 자산 2조원에서 5조원으로 상향되면서 공정거래위원회의 집중 감시에서 벗어난 농심은 14년 만인 올해 다시 대기업 집단으로 분류될 게 자명했다. 이렇게 되면 신동원 농심 회장은 총수(동일인)로 지정돼 친족에 관한 모든 것을 신고할 의무를 진다. 친족이란 배우자, 6촌 이내의 혈족, 4촌 이내의 인척 등이다.
'신동원 총수' 지정 앞두고 다급했던 농심그룹

14년 만에 대기업 집단에 지정될 ‘위기’에 봉착한 농심은 한 가지 묘수를 냈다. ‘독립친족경영’이라는 공정거래법상 예외 조항을 활용키로 한 것이다. 농심은 지난해 3월과 4월 두 차례에 걸쳐 우일수산, 세우, 해성푸드원, 신양물류 등 신동원 회장의 외삼촌과 사촌 형제들이 운영하고 있는 업체들을 기업 집단에서 제외해달라고 신청했고,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를 승인해줬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하 공정거래법) 시행령 제5조는 ‘기업집단으로부터의 예외’를 정해놨다. 총수와 친족 관계라고 하더라도 독립적으로 경영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면 기업집단에서 제외할 수 있다는 것이 골자다. 공정위가 이 같은 예외 규정을 만든 건 가족 경영이라는 한국 대기업의 독특한 특성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사업 규모가 커지거나 상속 과정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친족 간 계열 분리를 법적 테두리 안에서 허용해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일수산은 신동원 회장의 외삼촌인 김정조 회장과 그의 일족이 운영하는 기업이다. 농심에 주요 제품을 공급한 덕분에 국내 수산물 가공 분야에서 ‘톱3’에 올라섰다. 공정위 관계자는 “우일수산은 김 회장이, 나머지 3개 사는 김창경 씨가 독립친족경영 신청서에 기재됐다”며 “농심과 친족계열기업 간 지분 관계가 없고, 자금 대차 사례도 없는 등 요건에 해당돼 승인했다”고 설명했다.

농심의 독립친족경영 신청에 대해 일각에선 ‘자산 5조원 요건’을 회피하기 위한 조치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농심 외가 4인방 기업의 지난해 말 기준 자산총액은 우일수산 1333억원, 세우 843억원, 해성푸드원 396억원, 신양물류 963억원 등 총 3535억원이다. 하지만 농심은 올 4월에 결국 대기업 집단에 지정됐다. 공정위에 따르면 메가마트 정보기술(IT) 서비스 자회사인 엔디에스가 헬스케어 기업 유튜바이오 지분을 신규 취득하면서 그룹 전체 자산총액이 5조 3790억원으로 증가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설명대로라면 농심은 외가 기업들을 분리함으로써 대기업 집단 지정에서 빠져 나가려 했으나 계산 착오로 ‘미수’에 그친 셈이다. 어딘가 석연치 않다. 까다롭기로 소문난 독립친족경영 관문을 가까스로 통과해 놓고서 굳이 헬스케어 기업 지분을 신규 취득할 이유가 있을까. 이에 대해선 농심 관계자도 “5조원 요건을 피하기 위해 독립친족경영을 신청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공개하고 싶지 않은 비밀?’…외가 기업 4인방을 계열집단에서 제외
투자은행(IB) 업계에선 농심이 대기업 집단 지정을 피하려면 계열 분리가 최선책이란 분석도 나왔다. 신춘호 농심그룹 회장의 삼남인 신동익 부회장이 이끌고 있는 메가마트를 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하지만 농심은 형제 계열 분리가 아닌 외가 기업 4인방을 기업집단에서 뗐다.

농심의 선택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긴 하지만 공정위 감시망에서 인척 기업을 제외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란 분석이 좀 더 설득력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독립친족경영을 인정받더라도 인정 시점 이후 3년간 농심과의 거래 등을 보고해야 한다”며 “3년 동안 불공정 행위, 범법 행위가 없다면 그 이후엔 보고 의무가 사라진다”고 말했다.

실제 농심의 2021년간 감사보고서는 특수관계자 현황란에서 “우일수산㈜은 전기까지「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 따른 기업집단소속 계열회사에 해당하였으나, 당기부터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독립경영을 인정받아 기업집단 소속 계열회사에서 제외됐다”고 적시했다.

대기업으로 분류돼 있지 않았던 농심은 그동안 친족 기업에 관한 정보를 노출하지 않아도 됐다. 명백한 불법 행위만 없고, 설사 농심 오너 일가의 사익 편취 행위가 있었더라도 누군가 고발하지 않는 이상 수면 위로 떠 오를 일은 없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대기업 집단으로 지정된 이후엔 사정이 달라진다. 농심그룹의 총수인 신동원 회장은 친족과 관련한 모든 거래 정보를 세세하게 공개해야 한다. 실수라도 누락이 발견되면 형사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우일수산, 세우, 해성푸드원, 신양물류 등 농심 외가 4인방은 신 회장의 인척이 지배하는 회사다. 신라면 등 농심의 주요 라면 스프에 들어가는 핵심 원료를 공급하는 등 외가 4인방과 농심은 수십 년 간 내부거래를 통해 특수한 관계를 맺어왔다. 4개 기업의 지난해 매출액은 약 4000억원에 달했다.

이에 대해 농심측은 "우일수산에 대해 농심은 100여 개 납품사 가운데 하나로 판단하고 있었으나, 2020년 4월에 인척 4촌 이내 회사는 소속회사로 편입시켜야 한다는 공정위의 지적을 받고 소속회사로 등록했다. 그 과정에서 친족 독립경영을 신청할 수 있는 규정을 알게 되었고 지분 소유, 자금 대차, 임원 겸직이 없어야 한다는 요건이 충족되어 독립경영을 신청, 2021년 4월에 받아들여진 것이다. 인지하지 못했던 행정절차를 파악하고 그대로 진행한 것일 뿐, 친인척 회사의 존재를 숨기려는 의도 등이 있었던 것은 전혀 아니다”고 해명했다.
전속성과 내부거래의 모호한 경계
농심은 내부거래 비중이 높은 그룹으로 지목돼 왔다. 농심홀딩스를 지배회사로 농심, 율촌화학 등 상장사 4개, 비상장사 21개, 해외법인 19개 등 총 44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 농심그룹은 라면 스프 제조사(태경농산), 포장재 공급사(율촌화학) 등을 통해 주요 제품의 원료 공급에서부터 제조·가공까지 수직 계열화를 달성했다.

태경농산은 농심홀딩스의 100% 자회사지만, 율촌화학만 해도 신동윤 부회장(19.36%, 9월 말 기준)을 포함한 오너 일가가 26.53%를 보유하고 있다. 신동익 부회장과 그의 자녀들이 100% 지분을 갖고 있는 농심미분만 해도 지난해 137억원 매출 중 27.7%인 38억원이 농심 등 특수관계자와의 거래에서 발생했다.

농심그룹과 신동원 회장 외가 기업과의 내부 거래는 좀 더 노골적이다. 세우는 지난해 전체 매출(1028억원)의 61%(632억원)를 농심과의 거래에서 발생시켰다. 농심그룹이 밝힌 바에 따르면 농심이 우일수산으로부터 지난해 매입한 원재료 매입액은 221억원이었다. 우일수산의 지난해 매출액(1636억원)의 13%에 해당하는 규모다. 해성푸드원(농업법인 해성 포함), 신양물류의 농심그룹 의존도도 상당히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농심의 외가 4인방 기업과 관련해 특히 주목할 지점은 높은 배당 성향이다. 우일수산은 지난해 58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거뒀는데 배당금 총액은 50억원에 달했다. 배당 성향은 84.92%다. 2012년 배당 성향이 14.2%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꾸준히 상승한 셈이다. 세우 역시 지난해 33억원을 신 회장의 외삼촌과 조카들에게 배당했다. 배당 성향은 70.34%다. 해성푸드원은 작년 32억원의 순이익을 냈는데 중간배당으로 37억원을 썼다. 그나마 여러 차례 증자를 할 정도로 상황이 여의찮았던 신양물류만 지난해 배당 성향이 30%(배당금 총액 12억원)에 그쳤다. 외가 기업 4곳에 지급된 지난해 배당 총액은 137억원에 달한다.
외가 기업에 연간 137억원 배당금 몰아줘, 업계 일각 "공정 거래에 문제 있어"
식품업계에선 농심이 오뚜기, 팔도 등 다른 라면 제조사들과 달리 특수 관계인과의 거래 비중이 높다고 지적한다. 한 농산물 가공업체 관계자는 “라면 스프에 들어가는 핵심 양념은 비밀 유지 차원에서 농심이 특정 업체와 거래할 수 있겠지만 파, 다시마, 새우, 감자, 소고기 분말 등 일반적인 농·축·수산물은 꼭 농심 관계사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공급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꼬집었다.

특수 관계자와의 수의 계약에서 일종의 불공정 이슈가 제기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농심 관계자는 “대규모 물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어야 하고, 고품질의 원료를 낮은 단가에 납품할 수 있는 다른 업체를 찾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또 다른 농수산물 가공업체 관계자는 “농심 임직원들 사이에서도 ‘김 회장’으로 불리는 외가 기업들은 단순 공급업자가 아니라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오너 기업으로 통한다”며 “농심이 공개경쟁 입찰로 원료 수급 방식을 바꾸기만 한다면 농심이 원하는 조건에 물건을 공급할 업체들이 줄을 설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농심 사례를 들어 공정거래법의 독립친족경영 조항에 허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독립경영을 판단하는 요건에 내부거래 비중이 빠져 있어서다. 공정위 관계자는 “비밀 유지 등을 위해 특정 업체와만 거래하는 이른바 전속성이라는 개념과 내부거래를 명확히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면서도 “내부거래 비중이 높은 기업이 독립경영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느냐는 법적으론 문제없지만, 사회 통념상 모호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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