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어제 0.25%포인트 기준금리 인상을 결정했다. 내달 미국 중앙은행이 빅스텝을 결정하면 한·미 간 금리차가 1.25%포인트(한국 연 3.25%, 미국 연 4.5%)까지 벌어지지만, 어려운 경기 상황을 감안해 소폭 조정안에 만장일치로 찬성표를 던진 것이다. 석 달 전만 해도 “한은이 정부로부터 독립적이지만 미국 중앙은행으로부터는 그렇지 않다”던 것과 확실히 달라진 움직임이다.
한은이 자금 유출 리스크를 지면서 금리 인상 속도 조절에 나선 것은 그만큼 한국 경제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방증이다. 현재 한국 경제는 말 그대로 풍전등화다. 고금리·고물가·고환율 등 복합 악재에 글로벌 경기 침체까지 겹치며 이미 침체 국면에 진입했다는 경고가 나온다. 성장률은 2년 연속 반토막 행진이다. 한은을 포함한 거의 모든 국내외 경제연구기관이 지난해 4%였던 성장률이 올해 2%대, 내년은 1%대로 떨어질 것으로 점치고 있다. 특히 수출이 문제다. 수출은 팬데믹 광풍 속에서도 한국 경제를 지탱해온 최후 보루였다. 그러나 반도체 시장 침체 등으로 지난달 2년 만에 첫 역성장한 데 이어 내년엔 3.1% 더 줄 것으로 예상된다. 수출 부진은 가뜩이나 어려운 내수와 투자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내년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2.2%)를 유지하면서 한국 성장률은 두 달 만에 0.4%포인트 하향 조정(2.2%→1.8%)한 이유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우리 금리정책은 국내 요인이 먼저다. 금리 인상으로 여러 경제 주체의 어려움이 가중된다는 점을 예상했다”고 말했다. 물가도 급하지만 성장을 챙기지 않을 수 없는 시점에 다다랐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실제로 1%대 성장으로는 나라 살림살이부터 일자리, 복지까지 경제의 근간이 흔들리는 사태를 피하기 어렵다.
저성장 기조를 시급히 되돌려놓지 않으면 안 된다. 묘수는 있을 수 없다. 고금리 상황과 부동산시장 침체, 금융시장 경색, 부채 부담 등으로 소비와 투자를 획기적으로 늘리기는 쉽지 않다. 수출을 통해 성장동력 엔진을 다시 살리지 않으면 안 된다.
다행스럽게 새 정부가 5대 수출강국 도약 등 경제정책 방향을 잘 잡았다. 노동·규제·연금·교육 등 구조개혁을 통해 기업 생산성과 경쟁력을 높이고 이를 통해 수출을 늘린다는 방향이다. 그러나 기업들을 뛰게 할 법인세 인하와 규제완화 관련 법안들이 모두 거대 야당의 몽니에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또 산업 현장은 민주노총 파업으로 물류와 생산이 멈춰 설 위험이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을 그대로 두고 저성장 타개를 논할 수 없다. 경제위기 앞에 여야, 노사가 따로 있을 수 없다. 모두 힘을 모아야 한다.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