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11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p) 인상했다. 물가 및 원·달러 환율이 안정세를 보이고 미국 중앙은행(Fed)이 속도 조절을 시사하면서 연속 빅스텝(0.5%포인트 인상)은 부담이 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통화 긴축 기조가 이어지면서 가계의 부채 부담은 커지게 됐다. 이번 금리 인상으로 가계의 전체 이자 부담은 3조3000억원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24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11월 정례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현행 연 3%에서 0.25%p 인상했다. 시장의 예상대로 베이비 스텝을 단행한 것이다. 12월 추가 금융통화위원회 회의가 예정돼 있지 않은 만큼 올해 마지막 기준금리는 연 3.25%로 마무리됐다.
지난달 금통위는 기준금리를 한꺼번에 0.5%p 인상하는 빅스텝을 단행하며 3%대 기준금리 시대를 열었다. 높은 물가 오름세가 지속되고 원·달러 환율 상승으로 외환부문 리스크가 증대돼 정책 대응 강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최근 기대인플레이션율 하락과 함께 물가정점론이 힘을 받고, 원·달러 환율도 가파른 상승세가 주춤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1440원대를 뚫었던 원·달러 환율은 1350원선에서 거래 중이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금리 상승 속도를 조절할 가능성이 커지는 점도 국내 금리 인상폭을 축소하는 배경이 됐다.
23일(현지시간) 새벽 공개된 11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의사록에 따르면 미국 중앙은행(Fed) 고위 관리 대부분이 앞으로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늦춰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강도 통화긴축이 결국 침체를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에 귀를 기울이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12월 Fed가 0.5%포인트 금리 인상을 단행하는 빅스텝을 밟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다만 한은이 역사상 첫 여섯 차례 줄인상(4·5·7·8·10·11월)을 단행하면서 가계의 빚 부담은 늘어나게 됐다. 한은이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대출금리가 기준금리 인상 폭인 0.25%포인트 만큼 오르면 차주 1인당 연간 이자 부담이 16만4000원 늘어나는 것으로 산출됐다. 가계의 전체 이자 부담 규모는 3조3000억원 늘었다. 물론 실제 부담하는 가계의 이자부담은 가산금리나 시장금리 상승폭 등에 따라 차이가 생길 수 있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면서 은행권 변동형 주택담보 대출 금리 산출 기준이 되는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도 추가 상승할 전망이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달 신규 취급액 기준 코픽스는 3.98%를 기록, 사상 최고치로 뛰어올랐다. 상승폭(0.58%포인트)도 최대였다. 은행은 상승분을 고스란히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와 전세자금대출 금리에 반영한다. 국내 기준금리가 오르면서 연 8%를 돌파한 주택담보대출 금리 상단이 올해 안에 연 9%를 넘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경기 침체 먹구름이 몰려오는 점도 가계의 살림살이를 팍팍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한은은 기준금리 인상 직후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연 2.1%에서 1.7%로 낮췄다. 2020년 코로나19여파로 인한 역(-)성장 이후 최저 수준을 나타낼 것이란 얘기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전망한 내년 국내 성장률 전망치(1.8%)보자 0.1%포인트 낮은 수준이다. OECD는 국내 경제가 고물가, 고금리에 소비가 제약되고 반도체 경기 하락 등으로 수출이 둔화할 것이라고 봤다.
국내 경제가 1%대의 성장률을 기록한 것은 네 차례의 '위기' 뿐이었다. 1980년 오일쇼크와 1998년 외환위기,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그리고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등이다. 2024년도 국내 성장률 전망치가 1%대의 낮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사실상 경기침체(Recession)'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채선희 한경닷컴 기자 csun0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