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A대리는 입사 4년차 제조업체 사무직군 직원입니다. 수도권에서 나고 자랐으며, 회사 또한 수도권에 위치한 본사에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A대리가 재직하고 있는 회사는 사무직군 직원들이라 하더라도 현장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 필요하다는 철학을 고수하고 있으며, 조직의 미래 성장동력이 될 사무직군 직원들을 회사의 모태가 되었던 지방 공장에 1년 이상 파견을 보내는 관행을 이어오고 있었습니다.
성실하게 근무해 오던 A대리 또한 조직의 미래 성장동력으로 인정받아 지방 공장에 파견 명령을 받아, 기숙사를 배정받고 공장에서 해야 할 지원업무를 인계받았습니다.
한편, 지방 공장의 직원들은 대부분 해당 지역 주민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생산직군 노동조합에 속해 서로 격 없이 지내는 분위기였습니다. 해당 산업의 호황기였던 1990~2000년 즈음에 입사한 인원들이 많아 전체적으로 연령대가 높은 편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성격이 외향적인 입사 30년차 B직원은 직원들에게 큰형처럼 여겨지며, 노조위원장까지 맡고 있었습니다.
A대리가 처음 해당 공장에서 업무를 시작함에 있어, 사람들이 사투리 섞인 반말 조 어조로 본인을 하대하는 것 같아 다소 마음이 불편하였습니다. 다만, 내용상으로는 A대리를 챙기는 것이고 친해지기 위한 표현들이라 생각하여 적응해 나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나 A대리가 참기 힘든 부분이 있었습니다. 노조위원장인 B직원의 장난이었습니다. 한 번은 앉아서 사무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뒤에서 헤드록(상대의 머리를 옆구리에 끼고 죄는 행동)을 걸어와서 놀라서 돌아보니 노조위원장 B가 웃으면서 인사를 건넨 후 업무상 용건을 얘기하였습니다. 악의는 없어 보였으나 괜히 목에 담이 올 것 같이 아프고, 기침이 나올 것 같은 불편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후에도 A대리를 부르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다가, 무언가에 맞고 안경이 벗겨지는 일이 있었습니다. 날아온 물체는 귤이었고, 던진 사람은 B직원이었습니다. B직원은 미안하다고 말하며 “아이코 잘 받지~ 잘 먹고~”라고 가볍게 넘겼습니다. A대리는 마음은 알겠으나 얼굴에 타격감이 남아 기분이 계속 좋지 못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혼자 살면 잘 먹어야지. 살 좀 찌고”라고 말하며 손등으로 배를 치고 간다던지, 눈이 졸고 있다며 검지 손가락으로 미간을 툭툭 치고 가는 등의 행위가 반복되었습니다.
B직원이 A대리에게만 이러한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격 없이 지내는 후배들에게 일관되게 하는 행위여서 A대리는 본인만 기분이 나쁜 것인지, 본인이 이상한 것인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러한 고민을 이어가다가, 고충처리 담당자와의 상담 중에 위와 같은 사실이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는지를 묻게 되었습니다. B직원은 아들뻘 후배 동생이 기특하고 귀여워서 친근함을 표현한 게 괴롭힘이냐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B직원의 행동을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판단>
A직원은 사무직군, B직원은 생산직군으로서 지위상 상하관계가 나누어져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B직원은 A직원의 30년 선배이며 노조위원장을 맡고 있는 점, 상호간의 소통 방식도 B직원은 A직원에게 반말조로 얘기하는 반면 A직원은 B직원에게 존대를 하는 점 등에서 B직원이 A직원에 대하여 종합적으로 관계의 우위가 있는 것으로 보이며, 이러한 우위에 기하여 A직원을 대해온 것으로 보입니다.
B직원의 행위는 업무상 필요한 행위로 볼 수 없으며, 설령 직원과의 친화를 위한 필요가 있었다고 주장하더라도 사회통념상 상당하지 않은 행위로서 업무상 적정범위 내의 행위로 보기 어려워 보입니다.
다만, B직원의 행위는 공장의 구성원 대부분 대수롭지 않게 여겨왔으며 친근감의 표현으로 인식해온 행위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신체적 정신적 고통 또는 근무환경 악화'를 발생시킨 행위인지에 대하여 논란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신체적 정신적 고통 또는 근무환경 악화'는 피해자에게 이와 같은 결과가 발생하였음이 인정되어야 하나, 피해자의 주관적인 피해 인지 사실만으로 인정되지는 않습니다. 객관적으로 피해자와 같은 처지에 있는 일반적이고도 평균적인 사람의 입장에서 신체적 정신적 고통 또는 근무환경 악화가 발생할 수 있는 행위여야 괴롭힘으로 인정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바로 ‘합리자 피해자 관점’이라고 합니다.
사안의 경우 B직원과 오랜 기간 가까이 지내왔고 해당 공장의 문화에 익숙한 타 직원들은 고통을 느낄만한 사안이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해당 공장의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직원A의 지역적, 문화적, 세대적 배경을 고려하였을 때 A직원과 같은 처지에 있는 일반 평균인 입장에서 사안과 같은 행위의 대상이 되는 경우를 상정해보면, 신체적 고통을 느낄 수 있고 이러한 행위의 반복으로 정신적 고통을 느끼거나 또는 근무환경 또한 악화될 수 있을만한 상황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행위자의 의도와 관계없이 관계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판단될 여지가 있는 사안으로서, 해당 행위가 지속되지 않도록 조치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이재민 행복한일연구소/노무법인 파트너노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