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의 고액예금 잔액이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이후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상에 본격 나서면서 시중자금이 은행으로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시장이 침체하자 상대적으로 고금리를 적용하는 은행 정기예금에 뭉칫돈을 옮기는 자산가가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31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은행의 정기 예·적금, 기업자유예금, 저축예금 중 잔액이 10억원을 넘는 계좌의 총예금액은 787조915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말(769조7220억원)보다 2.4% 늘어난 것으로 사상 최대 규모다. 1년 전(716조2350억원)과 비교하면 71조6800억원 증가했다.
10억원을 초과한 고액예금 계좌도 지난해 6월 말 8만4000개에서 올 6월 말에는 9만4000개로 늘었다. 이 중 10억원 초과 저축성예금 잔액은 2017년 말 499조1890억원에서 2018년 말 565조7940억원으로 500조원을 넘었고, 작년 말에는 769조7220억원을 기록하며 700조원을 돌파했다.
고액 정기예금 규모가 빠르게 증가하는 것은 급격한 금리 인상이 예금 금리에 반영돼서다. 현재 시중은행의 정기 예·적금 금리는 연 4~5%를 웃돈다. 한은이 지난 7월과 10월 두 차례 빅스텝(기준금리 한 번에 0.5%포인트 인상)을 단행하는 등 금리 인상 속도가 빨라진 게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기업도 투자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일단 은행에 돈을 넣고 관망하는 분위기다. 통상 10억원 초과 고액예금의 80~90%를 기업이 차지한다. 기업 자유예금은 작년 말 234조7850억원에서 올 상반기 237조3960억원으로 1.1% 증가하는 데 그쳤다.
저축예금은 같은 기간 13.9% 감소한 21조430억원을 기록했다. 입출금이 자유로운 대신 이율이 낮은 자유예금이나 저축예금이 아니라 고금리를 제공하는 정기예금에 몰린 것으로 관측된다. 은행권 관계자는 “개인은 물론 기업도 위기 상황에서 자산을 비교적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는 은행을 찾고 있다”고 했다.
이소현 기자 y2eon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