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7일 투기·투기과열지구 내 시가 15억원 초과 아파트에 대한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해제하겠다고 발표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달까지만 해도 "시기적으로 이르다"고 부인했지만,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이날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하는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규제 해제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불과 50일 만에 정부의 공식 입장이 바뀌면서 경제수장들의 당시 발언이 성급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 5일 한국경제신문은 정부가 15억 대출 규제 완화를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기재부는 직후 "시장 상황과 주택 수급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부동산 제도의 질서 있는 정상화를 추진 중에 있으나, 정책 발표 일정 등에 대해 관계부처 간 협의가 이뤄지거나 결정된 바가 없다"는 내용이 담긴 설명자료를 배포했다. 시장에서는 규제 해제 가능성을 열어둔 설명자료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기재부 관계자들도 당시 취재진의 질문에 "결정된 것은 아니지만 15억원 초과 아파트의 대출을 풀어주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며칠 뒤인 지난달 7일부터 정부 고위당국자들은 정 반대의 발언을 쏟아냈다. 추 부총리는 방송기자클럽 초청토론회에서 "현재 해제를 검토하고 있지 않다. 조금 발 빠르게 나간 소식"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반적으로 아직 시장 흐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금융 규제는 시간을 많이 두고 시장 상황을 봐가면서 (완화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원 장관은 다음날 한 방송사 인터뷰에 출연해 더욱 강한 수위로 15억 대출 규제 완화 가능성을 부인했다. 그는 "결국 부자들만 대출 받아 (집값) 하락기에 '줍줍' 하겠다는 것 아닌가. 이건 안 된다"며 "논의할 상황이나 시기가 아니다"고 못 박았다. 추 부총리와 원 장관이 갑자기 보도를 강하게 부인하자 업계에서는 "야당이 부자를 위한 정책이라는 프레임으로 공격하려하자, 일단 속도조절을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는 해석이 나왔다.
추 부총리와 원 장관은 이후에도 한 동안 "15억 규제 해제를 검토할 분위기가 아니다"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다 이날 갑자기 15억원 대출 규제 폐지가 공개된 것이다. 김 위원장은 회의에서 규제 폐지 이유에 대해 "그간 규제가 굉장히 강했지만 최근 금리가 오르고 정책 여건이 변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 부동산 시장의 연착륙에 대해서도 우려가 많고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서도 중요한 이슈"라고 덧붙였다. 부동산 관련 정책 목표가 '집값 잡기'에서 '시장 안정'으로 변경됐다는 의미다.
부동산 시장 관계자들은 "추 부총리와 원 장관 등 고위 당국자들이 50일 만에 말을 바꾼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정책을 검토하는데 필요한 시간 등을 감안하면 당시 발언이 적절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