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시장에 돈줄이 마르면서 4, 5대 그룹 대기업도 자금조달에 애로를 겪고 있다. 금융시장 경색을 막기 위해 정부가 ‘50조원+α’의 유동성 공급 계획을 발표했으나 불안감이 커지는 분위기다. 꺾이지 않는 고물가, 1400원대 중반을 오르내리는 고환율, 단기 급등의 고금리로 기업 쪽 자금흐름이 막히고 있다는 우려가 팽배해진다.
LG SK 한화 계열사까지 회사채 발행에 어려움을 겪는 자금시장을 보면 문제는 발행금리(이자)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기업들이 1년 내 갚을 단기 부채가 역대 최대 규모인 532조5193억원(6월 말)에 달하고, 심각한 복병으로 부각된 고위험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잔액도 25조원에 달하는 판이다. 무서운 수치들이 잇따라 튀어나오는 데다 LG전자 같은 우량 대기업도 워룸(전시상황실)을 만든다니 시중자금이 국공채 쪽으로 숨을 수밖에 없다.
지표도 좋은 게 없다. 어제 나온 한국은행의 10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1년8개월 만에 최악이다. 실적 부진과 재고 급증으로 애를 먹는 기업이 자금조달 어려움을 겪으면 투자와 고용을 줄일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심화한다. 정부 뒷배로 한계기업까지 안고 가면서 유례없는 이자 장사를 한 은행들이나 웃을 뿐, 안전지대는 어디에도 없다.
위기를 재촉하는 자금 경색이 더 나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SK하이닉스까지 내년 투자를 50% 줄일 지경이면 정작 ‘경제 워룸’을 열어야 할 곳은 정부다. 그런 점에서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정부의 경제팀장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나. 특히 자금시장을 총괄하는 김주현 금융위원장의 대응 방식과 위기의식에 문제점은 없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단순히 그가 레고랜드 사태에 원만치 못한 대처로 여야 국회의원들에게 질타를 당해서 하는 문제 제기가 아니다. ‘돈맥경화’는 멀쩡한 기업까지 넘어뜨리고, 위기를 더 깊은 수렁으로 밀어 넣는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이에 대한 일차적 대처는 엄연히 금융위 몫이다. 그래야 경제부총리가 세제·재정을 동원하는 거시정책과 구조개혁에 주력하고, 한은도 금리와 자금 공급의 완급에 집중할 수 있다.
당장은 자금시장의 경색을 막되, 구조개혁과 규제혁파에도 적극 나서 시장의 신뢰가 유지되게 하는 게 경제팀 역할이다. 그제 방한한 IMF 전문가들은 “한국의 펀더멘털은 강하지만 공공부채는 관리해야 한다”며 ‘GDP의 60%’라는 안전선까지 제시했다. 위기 때가 노동·연금·교육·공공의 구조개혁에는 오히려 적기라는 지적도 예사로 들어선 안 된다.
그런 점에서 한덕수 총리 주재의 청년정책조정위원회에서도 청년일자리 창출 방안이 심도 있게 논의 안 된 것은 아쉽다. 청년주택 50만 가구, 고용장려금 증액도 좋다. 심지어 실효성에 의문이 생기는 청년정책연구원까지 만들겠다는데, 최선의 청년대책은 ‘좋은 일자리’가 많이 나오는 것이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경제팀이 워룸에 들어서는 자세로 임하기 바란다. 정부의 위기관리 역량이 시험대에 본격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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