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마약 관련 소식이 자주 들려온다. 우리나라는 이미 2016년 유엔이 정한 마약청정국 지위를 잃어버렸다. 검찰에서 ‘마약범죄 특별수사팀’을 설치해 강력하게 대처한다니 우리나라가 다시 마약청정국이 되길 소망한다.
<중독에 빠진 뇌 과학자>의 저자 주디스 그리셀은 세계적으로 저명한 행동신경과학자이자 미국 벅넬대 심리학과 교수다. <중독에 빠진 뇌 과학자>는 취재하거나 통계를 모아 쓴 게 아니라 20년 이상 각종 마약에 빠졌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중독의 폐해를 생생하게 알리는 책이다.
그리셀이 중독에 발을 들인 것은 7학년(중학교 1학년) 때였다. 친구네 집 지하실에서 와인을 2L쯤 퍼마시고 취했을 때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는 초조함에 위안을 주는 해독제’를 만났다고 생각해 1년 내내 술을 마셨다. 이후 향정신성 약물에 빠지게 된 그리셀은 약을 마련하느라 여러 일탈을 감행했다. 대마, 코카인, 메스암페타민, LSD에 빠져 청소년기에 거쳐야 할 여러 과정을 대충 넘겼고, 약에 취해 그나마 경험한 일들도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리셀은 대학에 입학한 뒤 대부분의 시간을 술과 파티로 탕진하면서 약물에 취해 살았다. 결국 학교에서 휴학을 권했고 부모는 금전적인 지원을 모두 끊어버렸다. 이후 거처와 일자리를 옮겨 다니면서 약물에 빠져 사는 동안 거짓말과 변명으로 순간순간을 모면했다.
아버지의 사랑이 그녀를 건졌다
그러던 어느 날 거울에 비친 자신을 비참한 모습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마약에 의지했지만 3개월이 지나도 충격적인 이미지가 지워지지 않았다. 얼마 후 맞은 스물세 번째 생일, 못난 딸을 찾아온 아버지는 야단을 치는 대신 “네가 그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고 그 순간 그리셀은 엉엉 소리 내며 목놓아 울었다.술을 마시거나, 마약을 삼키거나, 주사를 맞거나, 대마를 피우지 않고는 하루도 버티지 못하는 상태였던 그리셀은 치료센터에서 28일간 머물렀고, 여성중간거주시설에서 3개월을 지냈다. 이후 피나는 노력 끝에 대학과 대학원을 14년 만에 졸업하며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다.
<중독에 빠진 뇌 과학자>는 뇌의 속성과 함께 대마, 아편, 알코올, 진정제, 각성제, 환각제, 기타 남용약물까지 다양한 중독성 물질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한다. 모든 파트에 저자의 경험과 마약을 함께했던 사람들의 사례가 담겨 있다.
알코올과 진정제는 불안 수준을 낮춰주고, 아편은 고통을 줄여주고, 각성제는 지루함을 감소시킨다는 유혹에서 마약을 시작하지만 저자는 그 유혹 속에 큰 함정이 있다고 경고한다. 니코틴과 카페인도 각성제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 상습 흡연자들은 심신을 이완하고 스트레스를 푸는 데 담배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만 생명을 단축시키면서 각종 질병을 유발한다.
청소년기의 약물 경험은 매우 위험
그리셀이 30년 동안 연구한 결과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생물학적 기질, 어마어마한 양의 약물에 대한 노출, 청소년기의 약물 접촉 경험, 촉발성 환경’ 이 네 가지가 중독에 빠지게 되는 원인임을 밝혀냈다.뇌가 채 성숙하기 전인 청소년기에 약물에 손을 대면 뇌와 행동에서 영구적인 패턴이 생겨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신경발달 과정에서 성인으로 보는 연령은 25세다. 어떤 중독성 약물이든 노출 정도가 일정 수준에 다다르면 ‘내성, 의존, 갈망’이라는 중독의 3대 특징이 나타난다.
그리셀은 너무 어린 나이에 약을 사용하는 바람에 신경이 둔감해져 보통 사람과 비교했을 때 어떤 일이든 감흥이 일기까지 더 많은 자극이 필요하다고 한다. 1980년대에 주사기를 돌려쓰다가 C형 간염에 걸려 고생했던 그는 30년 만에 겨우 완치됐다. 많은 친구들이 세상을 떠났거나 에이즈에 걸렸다며 자신이 살아남은 데다 에이즈에 걸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운이 좋다고 말한다.
하루하루 천천히 죽어가는 삶이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러웠다는 저자는 절망에 빠진 중독자들에게 더 나은 선택지가 있음을 알려 그들을 자유로 나아갈 수 있게 이끌고 싶어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일단 한 번 선을 넘으면 다시 자신을 통제할 수 있게 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며 중독성 물질에 절대 빠지지 말라고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