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기업 재무팀 분위기는 하나같이 어둡다. 치솟는 금리에 레고랜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사태까지 겹쳐 자금시장이 급격히 얼어붙고 있어서다. 만기가 도래하는 차입금을 차환(재조달)하기 위해 금융회사를 찾아 동분서주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생존을 위해 연초보다 2~3배 비싼 금리에 자금을 마련하는 기업도 눈에 띈다. ‘자금 보릿고개’에 봉착한 기업은 “정부의 유동성 지원 대책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건설사들 “돈줄 마를라” 공포감
건설사의 자금난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강원 춘천에 있는 레고랜드 사태로 건설사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이 멈춘 탓이다. 투자자들이 PF 유동화 상품에 돈을 넣지 않으면서 건설사의 유동성 리스크가 불거졌다. 충남지역 중견 건설업체인 우석건설은 지난달 말 납부 기한인 어음을 결제하지 못해 1차 부도 처리됐다.부도 난 업체까지 나오면서 건설사들의 자금조달 통로는 더 좁아졌다. 건설사의 회사채나 기업어음(CP)을 사들이려는 투자자는 자취를 감췄고, 은행이 대출을 꺼린다는 소문까지 확산하고 있다.
‘돈줄’이 말라가자 건설사들은 정부와 모회사에 손을 벌리고 있다. 신용등급이 BB+ 이하인 업체들이 즐겨 쓰던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P-CBO) 발행을 타진하는 대기업 계열 건설사마저 등장했다.
P-CBO는 신용도가 낮아 시장에서 소화될 수 없는 회사채를 대상으로 신용보증기금 등의 정부 기관이 보증을 서 채권 등급을 높여 유통이 가능하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대우건설은 지난 8월 신용보증기금 지원을 받아 800억원 규모의 P-CBO를 발행했다. 롯데건설도 300억원어치의 P-CBO를 찍었다. 대우건설, 롯데건설 같은 대기업이 P-CBO 시장에 등장한 건 그만큼 건설사들의 자금 사정이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유상증자도 추진 중이다. 롯데건설은 다음달 2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한다. 롯데건설은 20일 계열사인 롯데케미칼로부터 5000억원을 단기차입하기도 했다. 만기는 이날부터 내년 1월 18일까지다. 이 회사는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사업, 청담삼익 재건축 사업 등 대형 개발 사업 영향으로 PF 조달 규모가 급격히 불어났다. 만기 도래하는 PF를 상환하기 위해 유상증자를 추진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증권사도 자금난…금리 2~3배 뜀박질
PF 시장이 마비되자 증권사로도 유동성 위험이 번지고 있다. 통상 건설사가 PF 유동화증권을 발행하는 과정에서 주관사인 증권사들이 지급보증·매입보장을 제공한다. PF 유동화증권이 시장에 팔리지 않으면 증권사가 이를 떠안아야 한다. 투자자를 구하지 못한 PF 유동화증권을 매입한 증권사들을 중심으로 자금난이 심화되고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시장에서 연 15% 금리를 제시한 PF 유동화증권도 투자자를 구하는 데 애를 먹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고 전했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올 연말까지 증권사와 건설사가 신용보강·매입보장을 한 PF 유동화증권의 차환 발행 예정 규모는 총 32조원이 넘는다.일반 대기업 자금 사정도 좋지 않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3년 만기 AA- 등급 회사채 평균 금리는 지난 19일 연 5.533%로 연중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1월 3일(연 2.46%)에 비해 2배 이상 뛰었다. 같은 날 3년 만기 BBB- 등급 회사채 평균 금리도 연 11.388%까지 치솟으면서 이 역시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1월 3일(연 8.316%)에 비해 3%포인트가량 높은 수준이다. 통상 회사채 금리가 오르는 시점에는 채권 평가손실을 우려해 기관의 채권 매입 수요가 줄어든다.
높은 금리를 감수하고서 자금을 확보하려는 기업도 늘었다. 한화솔루션은 오는 27일 15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할 계획이다. 지난 1월 연 2.765~3.029%에 회사채를 발행한 이 회사는 9개월 만에 2배 높은 금리에 회사채를 찍을 전망이다. 현대오일뱅크 화학 계열사인 현대코스모는 26일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14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한다.
김익환/박종필/장현주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