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伊 오페라 '3色 감동'…예술의전당 '스페셜 갈라' [송태형의 현장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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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 공연’이라고 해서 조금은 얕잡아 봤던 마음을 고쳐먹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KBS교향악단의 연주에 맞춰 막이 열리고 스카르피아 역을 맡은 최기돈의 묵직한 바리톤 음성이 들리면서부터입니다. 공연 제목 그대로 ‘일반적인 갈라’ 에서는 경험하지 못했던 ‘특별한 오페라 갈라’가 펼쳐졌습니다. 지난 19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린 ‘2022 예술의전당 SAC 오페라 갈라‘ 프레스콜 현장입니다.

‘SAC 오페라 갈라‘는 21~23일 사흘간 매일 다른 프로그램의 공연을 선보입니다. 이날 프레스콜에서는 ’스페셜 갈라‘라는 타이틀이 붙은 셋째 날(23일) 공연이 안내방송 멘트부터 커튼콜까지 본 공연과 동일하게 진행됐습니다. 푸치니의 ‘토스카’ 2막(40분)과 베르디의 ‘리골레토’ 서곡과 3막(35분),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주요 장면(40분)이 10분의 인터미션을 두고 이어졌습니다.

무대에 오른 세 편은 모두 이탈리아 오페라로 국내에서 자주 상연되는 인기 작품들입니다. 각 공연은 작품에서 가장 격정적이고 극적이면서 ’대표 아리아‘가 나오는 막이나 장면들을 보여줍니다. 무대에 핏빛이 비치지는 않지만, 정욕과 집착, 질투 등으로 인해 주요 인물이 죽는 내용이 들어 있는 것도 공통점입니다.

공들인 무대입니다. 단 하루만 작품의 일부를 상연하는 갈라 공연임에도 세 편 모두 여러 날 공연하는 ‘전막’ 오페라 못지않은 완성도를 보여줬습니다. 무대 연출과 가수들의 가창과 연기, 오케스트라 연주 등 오페라를 구성하는 모든 면에서 수준 높은 종합예술무대를 구현했습니다.

공연장인 오페라극장 구조와 시설과 장치 등을 잘 활용한 연출이 인상적입니다. 세 편 모두 정선영이 연출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첫 번째 무대인 ‘토스카’ 2막 공연이 가장 참신하고 돋보였습니다. 직육면체 기둥들과 대형 커튼, 몇몇 소품만으로 극 배경인 경찰 총독 스카르피아 집무실을 현대적이고 세련되게 나타냈습니다. 이런 무대 세팅을 바탕으로 움직이는 배우들의 동선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습니다.

무대 뒤 기둥 사이에 걸려 출입문 역할을 하는 대형 커튼을 주목할 만합니다. 토스카의 열정을 상징하는 듯한 붉은 꽃이 그려져 있는 하안 커튼의 밝기와 색상이 극 내용과 주인공의 심상에 따라 조명을 받아 미묘하게 변합니다. 2막을 마감하는 연주에서 다이내믹(셈여림)에 맞춰 밝기가 달라지는 커튼이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스포일러의 위험이 있지만, 토스카가 스카르피아를 살해하는 방식이 새롭습니다. 원작처럼 칼로 찌르는 것이 아니라 소품을 이용해 교살(絞殺)합니다. 이전 ‘토스카’ 무대에선 본 적이 없는 창의적인 방식입니다. 현실성은 좀 떨어지지만, 전체적인 무대 분위기와 배경 음악에 딱 맞아떨어지는 배우들의 실감 나는 연기와 녹아들어 그럴듯했습니다.

‘리골레토‘ 3막에서는 공연장의 승강 무대 장치를 그대로 세트로 활용해 극 배경으로 삼는 게 기발했습니다. 서곡이 끝날 무렵 무대 막에 작품의 배경을 영상으로 잠시 띄워 보여주는 것도 세심한 연출입니다.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에선 유명한 간주곡을 먼저 들려준 후 단출한 디자인의 마을 광장 세트를 배경으로 주요 장면들이 이야기의 흐름을 타고 부드럽게 이어졌습니다. 극 내용에 맞춰 배경 영상과 조명이 자연스럽게 바뀌고 노이 오페라 코러스 합창단원들이 연기하는 마을 사람들을 비롯한 인물들이 잘 설계된 등·퇴장 동선으로 오차 없이 움직인 덕분입니다.

이렇게 디테일한 무대 연출이 주역 가수들의 뛰어난 가창과 몰입도 높은 연기를 더 빛나게 했습니다. 한국의 정상급 성악가들이 이름값을 톡톡히 해냅니다. 특히 ‘토스카’의 타이틀롤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산투차 역을 맡은 소프라노 서선영은 지금이 최고 전성기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절정의 퍼포먼스를 보여줬습니다. 토스카와 산투차의 대표 아리아인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와 ‘어머니도 아시다시피‘를 빼어나게 소화했습니다.

‘토스카’의 카바라도시,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투리두 역을 맡은 테너 백석종은 그동안 무대에서 보지 못했던 보물을 발견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런던 로열오페라, 뉴욕 메트로폴리탄 등 세계 오페라무대에서 주역 가수로 활동하고 있는 성악가로 이번 공연이 국내 메이저 데뷔 무대라고 합니다. 최근 런던 로열오페라하우스에서 요나스 카우프만을 대신해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에 출연해 호평받았다고 했는데, 투리두의 유명 아리아 ‘어머니, 이 술은 독하군요’를 들어보니 그럴 만했습니다. 풍성한 성량과 심지 곧은 목소리로 극에 착 달라붙은 감정을 실어 부르는 열창이 감동적이었습니다. 다른 주역들도 고른 기량으로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상대적으로 아쉬웠던 것은 ‘리골레토‘의 유명한 4중창 대목이었습니다. 원작자인 빅토르 위고가 듣고는 "나도 희곡에서 글로써 동시에 네 명이 말하게 할 수 있다면"하고 감탄했다는 중창입니다. 만토바 공작이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아가씨여'라고 부르면서 막달레나를 꼬시고, 밖에서 질다와 리골레토가 이 모습을 지켜보며 분노와 복수심을 표출하는 노래입니다. 한 음악에 네 명이 각각 다른 선율과 가사로 시차를 두기도 하고 동시에 부르기도 하며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게 묘미인데, 이번 무대에서는 앙상블이 그다지 좋지 못했습니다. 네 명의 소리가 또렷하게 들리지 않아, 각 인물의 성격과 심정을 관객에게 충분히 드러내지 못했습니다.
토시유키 카미오카가 지휘하는 KBS교향악단의 연주도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웠습니다만, 일부 대목에선 무대와 조금씩 어긋나기도 했습니다. 이번 프레스콜이 최종 리허설의 성격인 만큼, 본 공연에선 앙상블의 합이 더 좋아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갈라’의 아쉬움은 분명히 있습니다. 예를 들어 ‘토스카‘ 2막이 끝난 후에는 3막에 바로 이어지는 ‘별이 빛나건만’을 백석종의 목소리로 듣지 못하는 것이 그렇습니다. ‘리골레토’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무대의 흐름과 분위기로 전막을 보고 싶은 생각이 들게 했습니다. 그만큼 각 공연의 완성도가 뛰어났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예술의전당이 ‘프리미엄 오페라’를 표방하며 내년 ’투란도트‘와 ‘노르마’를 시작으로 선보일 전막 오페라 공연이 기다려집니다.

이번 프레스콜은 또한 23일 본 공연뿐 아니라 21일 이경재 전 서울시오페라단장이 연출을 맡은 ‘오프닝 나이트’와 22일 정선영이 연출하는 ‘모차르트 오페라 하이라이츠’ 공연에 대해서도 기대를 갖게 했습니다. 21일엔 KBS교향악단(지휘 토시유키 카미오카)가 연주하고 서선영, 김정미, 김우경, 강형규, 사무엘 윤 등 20여명의 성악가가 무대에 오릅니다. 22일에는 ‘모차르트 갈라’ 성격에 맞게 모차르트에 정통한 악단인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지휘 게르트 헤르클로츠)가 연주하는 게 눈길을 끕니다. 황수미, 홍주영, 손진희, 김우경. 사무엘 윤 등이 출연합니다.

송태형 문화선임기자 toughl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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