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의 항생제 신약 ‘팩티브’는 실패한 약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2003년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은 국내 최초 신약 타이틀을 얻었지만 시장에선 철저히 외면받았다. 출시한 지 20년 가까이 됐지만 연 매출은 100억원 안팎에 그친다. 게다가 일부 개발도상국에서 판매될 뿐 세계 최대 의약품 시장인 미국에선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10년 넘게 약 3000억원의 개발비를 쏟아부은 것을 감안하면 초라한 성적표다.
업계는 팩티브 실패의 원인을 상업화 전략 부재에서 찾는다. 규제당국 허가 이후의 전략이 미흡했다는 것이다. 악착같이 연구개발(R&D)에만 매달렸을 뿐 약을 어떻게 팔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전략은 뒷전이었다. 팩티브 개발 당시 글로벌 판권을 가져갔던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은 1999년 FDA 허가에 실패하자 3년 뒤 권리를 반환해버렸다. LG화학은 2003년 독자적으로 허가를 받아내긴 했지만 이미 때를 놓친 뒤였다. 경쟁 약물(아벨록스)이 먼저 시장에 출시되면서 설자리가 없어졌다.
더군다나 콧대 높은 미국 의사들이 ‘제약 변방’인 한국산 신약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2012년 당뇨 신약 ‘제미글로’가 국내 허가를 받았지만 LG그룹 내에서조차 신약 개발 사업의 의지가 약해졌다. 인재들은 줄줄이 빠져나갔다. 급기야 LG생명과학은 2017년 ‘큰 형님’인 LG화학에 흡수됐다.
LG화학이 신약 개발 사업에 다시 승부수를 던졌다. 항암제 개발 바이오벤처인 미국 아베오 파마슈티컬스를 인수하면서다. 1947년 창사 이후 최대 규모인 5억6600만달러(약 8000억원)를 아베오 인수합병(M&A)에 투입한다. 아베오는 신장암 표적치료제 ‘포티브다’를 개발해 FDA 허가를 받은 혁신 바이오벤처다. 그만큼 이번 M&A에 시장이 거는 기대가 크다.
무엇보다 당장 포티브다 매출을 끌어올리기보다 아베오의 FDA 신약 허가 노하우, 미국 내 항암시장 유통 네트워크를 빠르게 내재화하길 바라는 분위기다.
LG화학이 상업화를 앞두고 사람 대상 임상 중인 항암제만 4개다. 자체 파이프라인(후보물질) 상업화에 아베오의 역량이 녹아들길 기대하고 있다. 이것이 현재 개발 중인 항암제의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어서다. 지난해 매출(7600억원·생명과학사업 기준)보다 많은 돈을 아베오 인수에 들인 LG화학이 20여 년 전 팩티브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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