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엔화 가치가 달러당 150엔 수준에 근접하며 32년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일본 금융당국이 시장 개입을 고려하는 가운데 150엔 벽이 무너지면 엔화 가치 하락세가 더 심해질 것이란 의견이 나오고 있다.
18일 일본 교도통신에 따르면 엔화 가치는 전날 뉴욕시장에서 장중 한때 달러당 149.07엔을 기록했다. 이 가치가 달러당 149엔을 돌파한 건 1990년 8월 이후 32년 만에 처음이다. 연초 달러당 110엔대 수준이었던 엔화 가치는 지난 3월 120엔을 돌파하면서 급등세를 보였다. 지난달부터는 140엔을 웃도는 가격이 유지되고 있다.
교도통신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5일 달러 강세에 대해 '(다른 국가들의 통화 가치 하락에 대해) 우려하지 않는다'고 발언했던 것이 엔화 메도세를 일으켰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10년물 국채 금리가 연 4%를 웃돈 점, 제레미 헌트 영국 재무장관이 감세책 철회 의사를 밝힌 점도 엔화 약세에 영향을 줬다.
일본 금융당국은 엔화 시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스즈키 순이치 일본 재무상은 이날 "과도한 움직임에 적절히 대응한다는 입장엔 변화가 없다"며 "오늘도 긴박한 마음으로 시장을 주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날에도 "또 다시 엔화 매수 등으로 시장에 개입할 수 있다"며 엔화를 매수하거나 달러를 매도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지난달 22일 일본 금융당국은 200억달러를 시장에 풀면서 24년 만에 엔화 시장에 개입했다. 당시 146달러에 육박했던 엔화 가치는 140달러 수준까지 떨어졌지만 이는 미봉책에 그쳤다.
일본 금융당국의 시장 개입 효과는 이번에도 제한적일 것이란 의견이 나온다. 미우라 에이치로 니세이자산운용 채권 부문 총 책임자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중앙은행(Fed)이 금리 인하를 시작하거나 세계 금융시장이 불안정해지는 등의 위기가 현실이 되는 경우에만 이 상승 모멘텀이 멈출 것"이라며 "역사적으로 볼 때 (중앙은행의) 시장 개입은 영향이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민간 금융업계에선 '달러당 150엔'을 심리적인 저지선으로 보고 있다. 노무라증권은 "일본 정부가 엔화 가치가 달러당 150엔에 도달하기 전에 시장에 개입하는 걸 경계해야 한다"며 "오는 21일 발표될 일본 물가상승률 데이터가 시장 움직임을 자극할 것"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에 전했다. 사이토 유지 크레디트아그리콜 전무이사도 "상징적인 의미가 큰 150엔 선을 넘어서면 엔화 가치 하락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