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퍼와 오늘회, 메쉬코리아 등 유명 유통·패션 플랫폼이 줄줄이 문을 닫거나 사업을 매각하고 있다. 수수료를 낮춘 경쟁 플랫폼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사업 경쟁력을 유지하기 힘들어진 까닭이다. 최근 금리인상으로 인한 경기침체 영향으로 추가 투자받기 힘들어지면서 사업을 아예 접는 스타트업도 늘고 있다. 한 패션 플랫폼 대표는 “과당경쟁으로 온라인 플랫폼 시대가 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1세대 플랫폼의 퇴장
1세대 패션 플랫폼으로 불리는 ‘힙합퍼’가 이달 31일 마지막으로 서비스를 종료한다. 힙합퍼는 “서비스가 11월 1일을 기점으로 종료된다”고 공지했다.힙합퍼의 모회사 바바패션은 지난 8월부터 힙합퍼를 매각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으나 실패했다. 플랫폼 시장이 이미 레드오션이라고 판단해 힙합퍼를 산다고 나서는 투자자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바바패션에서 한 대형 패션기업에 힙합퍼 인수 여부를 타진했으나 수지타산에 맞지 않아 거부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힙합퍼는 무신사와 함께 1세대 온라인숍으로 인기가 높았다. 2000년대 초반에는 힙합 문화를 좋아하는 10~20대 사이에서 의류와 액세서리를 사는 곳으로 이름을 알렸다. 2018년 8월에 패션기업인 바바패션이 인수하면서 서비스를 이어왔고, 최근에는 고가의 스트리트 패션 상품을 판매하면서 20~30대 소비자를 겨냥했다.
하지만 수익이 나지 않아 사업을 전면 접기로 결정했다. 힙합퍼의 매출은 200억원, 거래액은 1000억원대에 머무른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스트리트 패션을 기반으로 한 무신사의 거래액이 2조원 규모로, 발란 등 명품을 전문으로 한 플랫폼이 속속 등장하면서 차별화 포인트가 사라졌다.
75만명 회원을 보유한 수산물 당일 배송 서비스 ‘오늘회’는 지난달 300여개 협력업체에 40억원의 대금을 지급하지 못하면서 서비스를 중단하기도 했다. 배달대행 플랫폼 ‘부릉’ 운영사인 메쉬코리아는 지난 6일 자금난에 허덕이다 경영권 매각에 나섰다.
플랫폼 시대 진다
신사업 모델로 여겨지던 플랫폼 기업들이 큰 타격을 받고 있다. 명품 플랫폼 3사 발란·트렌비·머스트잇의 기업가치는 금리인상으로 절반 가까이 하락했다. 발란은 800억~1000억원을 목표로 투자유치를 진행했으나 250억원 투자를 받는 데 그쳤다. 기업가치는 8000억원에서 3000억원 수준으로 조정했다.여성 패션 플랫폼 에이블리와 지그재그 등은 할인 쿠폰을 남발해 ‘밑지는 장사’를 하고 있다. 쿠폰을 살포하면 판매자와 부담을 나누는 구조다. 2018년에 에이블리에 입점했다는 한 판매자는 “쿠폰을 너무 많이 지급해 상품을 팔아도 이익이 1000원도 남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무신사도 전체 매출에서 수수료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2017년 51%에서 작년 39%로 줄어들 만큼 플랫폼 본연의 기능에서 멀어지고 있다.
플랫폼 기업은 이제 손실을 줄이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추세다. 발란은 손실을 줄이기 위해 배우 김혜수의 TV 광고를 전면 중단하기도 했다. 플랫폼 업계 관계자는 “플랫폼 사업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시대는 끝났다”며 “플랫폼을 기반으로 자체(PB) 브랜드를 론칭하거나 다른 부가가치를 창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