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부동산 신탁사들이 일반 재건축·재개발 사업뿐 아니라 가로주택정비사업 등 소규모 정비사업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전문성을 갖춘 신탁사가 시행을 맡아 사업을 투명하게 관리하고, 조합 내분 등에 따른 사업 지연도 방지할 수 있다는 게 장점으로 꼽힌다.
17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부동산 신탁사의 차입형 토지 신탁 수탁액은 지난 6월 말 기준 11조1000억원을 기록했다. 2016년 말(5조3000억원)에 비해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난 액수다.
신탁 방식 정비사업은 신탁사가 토지 등 소유자나 조합으로부터 업무를 위임받아 자금 조달부터 분양까지 사업 전반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신탁사가 시행을 맡으면 사업 초기부터 안정적으로 사업비를 조달할 수 있다. 신탁사가 자체 신용도를 바탕으로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보증을 통해 금융회사로부터 돈을 빌릴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조합과 시공사 간 갈등으로 공사가 장기간 중단됐던 서울 ‘둔촌주공’(사진) 재건축 사업 사태를 계기로 신탁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재건축·재개발 단지가 늘고 있다.
최근에는 이런 움직임이 가로주택정비사업장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가로주택정비사업은 도로 등으로 둘러싸인 면적 1만㎡ 이하 블록에서 진행되는 소규모 정비사업이다. 업계 관계자는 “소규모 정비사업장은 일반적인 정비사업과 비교해 사업성이 떨어져 조합 설립 단계부터 어려움을 겪는다”며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신탁사에 문을 두드리는 단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코람코자산신탁은 지난 8월 마포구 망원동 가로주택정비사업을 수주했다. KB부동산신탁도 9월 전북 전주시 금암동 가로주택정비사업의 사업시행자로 선정됐다.
업계에선 정부가 최근 신탁 방식 정비사업의 규제를 풀면서 이 같은 추세가 더욱 확산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부는 지난 ‘8·16 대책’에서 신탁사 사업 시행자 지정 요건을 ‘전체 토지면적의 3분의 1 이상’에서 ‘국·공유지를 제외한 토지의 3분의 1 이상’으로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주민과 신탁사 간 공정한 계약 체결을 유도하기 위한 표준계약서도 도입할 계획이다.
신탁업계 관계자는 “도심 역세권이면서 교육 환경도 좋은 소규모 정비사업장은 사업성이 비교적 높아 신탁사들도 관심이 높다”고 말했다.
이혜인 기자 he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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