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휴대폰 충전기를 자기 것으로 착각해 가져갔다는 해명에도 검찰이 절도죄로 판단했다면, 처분을 취소해야 한다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왔다. 절도의 고의가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는데도 유죄 취지로 기소유예 처분한 것이 자의적 검찰권 행사라는 취지다.
7일 헌법재판소는 A씨가 "내 것으로 오인했을 뿐 절도의 고의나 불법 영득 의사가 없었음에도 검찰이 기소유예 처분해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이 침해됐다"며 제기한 헌법소원 심판청구 사건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인용 결정했다고 밝혔다.
A씨가 가져간 충전기 주인인 B씨는 올해 1월 27일 제주시 한 카페에서 2시간 정도 머무르다 충전기를 꽂아둔 채 떠났다. 충전기를 찾으러 카페에 연락한 B씨는 점장에게 "폐쇄회로(CC) TV 영상을 보니 다른 사람이 충전기를 가져갔다"는 말을 듣고 경찰에 신고를 했다.
경찰은 1월 28일 카페를 방문한 A씨가 2시간 반 정도 친구와 있다가 B씨의 충전기를 콘센트에서 뽑아 떠난 장면을 CCTV로 확인하고 피의자로 특정했다. 이에 A씨는 "처음 앉은 자리에선 내 충전기를 사용했는데, 카페 내에서 자리를 옮긴 뒤 내 것으로 착각하고 가져온 것"이라고 항변했다.
A씨의 항변에도 제주지검은 올해 3월 절도 혐의로 A씨를 기소유예 처분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단순히 타인 점유물 침해로는 절도죄가 성립되지 않고, 재물에 대한 불법 영득의 의사가 입증돼야 한다.
이에 헌재는 "A씨는 비교적 긴 시간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다 자리를 이탈했다 돌아오며 B씨의 충전기를 발견한 것으로 보이는데, 순간적으로 본인 충전기를 콘센트에 연결해뒀던 것으로 착각하고 회수하려 빼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충전기 색깔이 동일한 경우 크기나 모양이 크게 다르지 않아 혼동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 A씨가 수사 도중 B씨의 충전기를 반환하지 않은 것도 비교적 저가라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절도의 고의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헌재는 "수사 기록만으론 A씨에게 절도의 고의 또는 불법 영득 의사가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수사기관은 A씨의 충전기 취득 전후 행동을 면밀히 수사하지 않은 채 피의사실을 인정해 기소유예 처분했다"고 봤다. 그러면서 "수사미진과 증거판단의 잘못으로 A씨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했다"고 밝혔다.
장지민 한경닷컴 객원기자 newsinf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