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연 경기지사(사진)가 오는 8일로 취임 100일을 맞는다. 중앙행정에서 잔뼈가 굵은 그가 지방행정가이자 정치인인 도지사로서 험로에 돌입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경기남부국제공항 신설(수원군공항 이전),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신설 등 공약의 이행이 쉽지 않고, 김 지사가 강조했던 '협치'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회의 수도 초석다진 100일 자평
김 지사는 "경기도를 대한민국의 중심, 기회의 수도로 만들겠다"고 강조해왔다. 대한민국이 처한 양극화와 저출산, 고령화 등의 문제를 기회를 만들어내 풀 수 있다는 주장이다. 경기도는 김 지사의 취임 100일이 이런 기회의 수도를 만들기 위한 초석을 다시는 기간이었다고 설명한다. 도민과 공직자들에 왜 기회가 필요한지 어떻게 도민에게 기회를 제공할지 알리고 고민하는 기간이었다는 얘기다. 김 지사는 취임 100일을 맞아 경기도를 위한 '5대 기회'를 제시했다. 5대 기회는 △사회진출을 준비하는 청년에 정책 패키지를 지원하고, 은퇴를 앞둔 430만 베이비부머 세대에 일자리를 지원하는 '경기 기회사다리' △예술인, 장애인 등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지만 보상이 부족한 사람을 위한 '경기 기회소득' △취약 계층을 위한 '경기 기회안전망' △첨단산업 육성, 수소경제, RE100 선도, 혁신생태계 조성, K-콘텐츠 산업육성, 경기북부를 발전시키는 '경기 기회발전소' △옛 경기도청 부지에 사회 혁신 복합단지를 조성하는 '경기 기회터전' 등이다.
전임 이재명 지사(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기본'을 도정의 중점으로 삼았다면 김 지사는 '기회'를 대표 브랜드로 삼는 것으로 풀이된다.
머나먼 협치의 길
김 지사의 취임 직후부터 녹록치 않은 상황이 전개됐다. 코로나19가 재확산하고 고금리, 고물가의 복합 경제위기가 다가오는 가운데, 78대 78 여야 동수의 의회를 상대했기 때문이다. 김 지사는 도의회와의 협치를 강조했지만, 첫 단추도 쉽지 않았다. 취임 직후 정무부지사를 경제부지사로 바꾸고 처음 임명한 김용진 전 부지사는 임명된지 나흘만에 사퇴했다.
김 지사는 여야정 협의체를 협치의 돌파구로 삼겠다고 했다. 그러나 경기도 국민의힘에서 지사의 직접 참여를 요구하며 대립하면서 현재까지 제대로 가동되지 않고 있다. 여야가 맞선 도의회에서 어렵사리 1차 추경안을 통과시켰지만, 2차 추경안은 통합재정안정화 기금의 전출 문제를 놓고 대립하다 시기가 미뤄졌다.
획기적인 대응책 없인 김 지사 임기 동안 도의회와의 이러한 긴장 관계가 지속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경기도 관계자는 "김 지사가 정무수석 기회수석, 정책수석 등의 진용을 갖춘 만큼 '기회' 정책을 구체화하고, 도의회와의 관계를 점차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큰 공약 갈피 '아직'…갈등 극단에서 피했다
김 지사는 수원 군공항 이전과 연계된 경기남부권 국제공항 신설을 경기도 공론화위원회의 의제로 삼았다. 그러나 김 지사 취임 이후의 첫 공론화 의제는 수원 군공항의 대체부지로 거론되는 화성시민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1기 신도시 공약 재정비의 후퇴를 놓고 중앙정부와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 김 지사는 '경기도가 자체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일을 진행시키겠다'고 했지만, 부동산 경기 침체와 정부의 뜨뜨미지근한 대응 탓에 실마리를 풀기 쉽지가 않다는 지적이다. 김 지사가 역점 사업으로 추진 중인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신설 사업도 중앙 정부와의 협조가 필수적이라는 지적이다.
김 지사는 경기도의료원과 버스노조의 총파업 직전에서 해결하는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지난 7월 경기도의료원 6개 병원 노조는 처우개선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예고했고, 지난달에는 버스노조도 준공영제 시행 등을 요구했다. 의료원 노조는 인력증원 등의 제시안에 동의해 결국 파업을 철회했다. 버스노조가 김 지사가 제기한 '임기 내 준공영제 실현' 약속을 받아들이면서 경기도는 교통대란을 피할 수 있게 됐다. 버스노조 파업 예고에선 김 지사가 막판 협상장을 직접 찾고, 합의 직후에는 노사를 만나 격려하는 등 현장 행보가 힘을 발휘했다는 평가다. 하지만 버스 준공영제의 경우 작지 않은 예산이 투입되는데다, 노조가 도의 약속인 '단계적 이행'을 지켜보기로 예고함에 따라 매년 불씨가 타오를 수 있다는 평가가 많다.
소통행보는 호평…잠룡 김동연의 가능성은
김 지사의 소통행보는 호평을 받는다. 페이스북을 통해 도정을 알리고 있다. 취임직후 공관을 개방하고, 시민 공모를 받아 도담소로 이름을 바꿨다. 비서실장을 내부 공모를 통해 뽑고, 도청 내부 쓴소리 전담팀인 레드팀을 만들었다. 김 지사는 도를 돌며 가정 밖 청소년 공무원 노조, 해외 사절, 해외투자자, 기업인 등을 만났다. 경기신용보증재단을 찾아 소상공인을 만났고, 옛 도청사 인근 상인을 만나 애로사항을 들었다. 도민들과 만난 약속은 소상공인 보증지원, 옛 청사 활성화 대책 등의 정책으로 구체화했다. 김 지사는 수도권 유일의 더불어민주당 소속 광역단체장으로 차기 대권주자 반열에 올라 있다. 흙수저 판자촌 출신의 자수성가형 고위관료라는 브랜드도 갖고 있다. 하지만 이재명 전 지사가 당권을 쥐고 있는 민주당에선 급진·개혁 이미지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애초에 관료, 지자체장 출신이 민주당 내부에선 중용된 전례가 적은 가운데, 아직 정치인으로서의 걸음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경기도청 내부에선 아직까지 '김동연의 사람'이라고 부를 인물들이 없다는 말도 나온다. 조만간 예정된 국회 행안위의 경기도 국정감사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사법리스크 국감'이 될 전망이다. 뒤집어 말하면 아직 김동연표 정책은 첫 발도 떼지 못했다는 의미다.
수원=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