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외화 송금’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전 은행 지점장 등 두 명을 추가로 재판에 넘겼다. 이번 사건으로 기소된 인물만 9명으로 늘어났다. 이들 일당이 불법 해외송금을 통해 빼돌린 금액만 9300억여원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대구지방검찰청 반부패수사부(부장검사 이일규)는 6일 유령회사를 세운 뒤 허위 증빙자료를 만들어 가상자산 매매대금 4391억원을 정상적인 수입대금인 것처럼 속여 해외로 송금한 혐의로 해당 유령회사 대표인 A씨를 구속 기소했다고 발표했다. 또 다른 불법 외화송금 일당과 공모해 이들의 가상자산 매매대금 4957억원이 해외로 빠져나가도록 도운 우리은행 전 지점장 B씨도 구속 기소됐다. B씨는 불법 송금거래를 은행 ‘의심거래 경고’ 보고대상에서 제외하고 범죄 일당에게 가상자산 규제 회피방법을 알려준 대가로 현금 2400만원과 상품권 100만원을 받았다.
검찰은 A씨와 B씨를 포함해 이번 불법 외화송금 사건과 관련해 총 2개 조직의 일당 9명(1명 불구속 기소)을 재판에 넘겼다. 다른 8명에 대해서도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해외 공조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들 범죄 일당이 보유한 외제차 3대(약 3억원)와 콘도 분양권(약 2억6000만원), 전세보증금 반환채권(약 5억원) 등을 추징보전하면서 범죄 수익 환수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 일당은 지난해 9월부터 올해 6월까지 일본(A씨 조직)과 중국(B씨가 가담한 조직)에 있는 공범들이 차명계정 전자지갑을 통해 옮긴 가상자산을 국내 거래소에서 팔아 현금화했다. 이 매각대금을 차명계좌로 세탁한 뒤 미리 세워둔 유령회사 계좌로 이체했다. 그 다음엔 은행에 허위 증빙자료를 제출해 수입대금을 송금하는 것처럼 꾸며 매매대금을 해외로 빼돌렸다. 두 조직이 이 같은 수법으로 빼돌린 금액만 총 9348억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수사팀은 똑같은 가상자산이 외국 거래소보다 국내 거래소에서 더 비싸게 거래되는 이른바 ‘김치 프리미엄’ 현상이 몇 년째 지속되자 이 효과를 누리려는 일본·중국 범죄 세력이 국내 조직과 손을 잡았다고 보고 있다. 이번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범행 구조가 처음으로 드러났다. 대구지검 관계자는 “이들 일당은 국내와 해외 가상자산 가격 차가 클 때 집중적으로 투매에 나서 수익 실현을 반복했다”며 “이로 인해 국내 가상자산 시장이 심각하게 왜곡됐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 투자자들에게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앞으로 이들 범죄 일당의 추가 불법송금 여부와 다른 공범의 존재 등을 수사할 방침이다. 범행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B씨의 불법행위를 막기 위해 우리은행이 상당한 주의와 감독을 했는지에 대해서도 면밀히 살펴볼 계획이다. 앞서 지난달 말엔 이상 외환거래를 담당했던 우리은행과 신한은행 영업지점을 압수수색하기도 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