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10월 05일 17:05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요즘 이른바 '노란봉투법'이 재계와 정치권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불법쟁의행위를 하더라도 근로자 개인에게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는 법'이라고 알려져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인지 살펴보려고 한다.
고전적으로 생각하면 파업과 같은 쟁의행위는 고용계약을 위반하는 것이니 그로 인해서 고용주에게 손해가 발생하거나 영업 방해를 받았다면 근로자와 노동조합은 민형사상 책임을 져야 하나, 근로3권은 헌법상의 기본권으로 보장돼 있어서 노동조합법은 민형사상 면책을 규정하고 있다(다만 폭력, 파괴행위는 제외). 그런데 이러한 면책은 어디까지나 '정당한 쟁의행위'에 대해 주어지는 것으로서, 대법원은 쟁의행위가 정당하기 위해서는 그 주체가 단체교섭의 주체로 될 수 있는 자이어야 하고, 또 단체교섭과 관련해 근로조건의 유지, 개선 등을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서 그 목적이 정당하여야 하며, 그 시기와 절차가 법령의 규정에 따른 것으로서 정당해야 할 뿐 아니라, 그 방법과 태양에 있어서 폭력이나 파괴행위를 수반하는 등 그밖에 반사회성을 띤 행위가 아닌 정당한 범위 내의 것이어야 한다는 기준을 정립하고 있다.
이와 같은 쟁의행위 정당성 요건들 중 첫 번째로 단체교섭의 당사자 관계가 전제돼야 하는데, 이번 대우조선해양 선박점거 사태에서 보듯이 하청업체와 원청 사이에는 직접 고용계약 관계가 없어서 원칙적으로 단체교섭의 당사자 관계가 아니므로, 하청업체가 원청의 사업장에 가서 벌이는 쟁의행위는 불법한 쟁의행위가 될 가능성이 높다. 직접 계약당사자인 하청업체의 사업주는 원청으로부터 일을 받는 입장이어서 소속근로자들에게 해 줄 수 있는게 별로 없으니,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들로서는 헌법상 보장된 근로3권이 허울뿐인 경우가 많은 것이다. 사실 이번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은 간접고용 확대로 인한 근로3권의 구조적 약화라고 할 수 있다.
대법원이 일찍이 2010년에 '원청이 하청업체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실질적, 구체적으로 지배, 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경우에는 부당노동행위의 주체인 사용자가 될 수 있다.'는 판결을 했지만, 이 정도로 원청을 단체교섭의 자리에 나오도록 하기에는 역부족인 것이 현실이다.
한편 우리 법상 공동불법행위 책임은 고의뿐만 아니라 과실로 가해행위에 관련된 사람까지도 책임을 질뿐만 아니라, 피해자에 대해서 가해자 각자가 손해 전액의 책임을 지면서 가해자들 사이에서 내부적으로 분담하도록 하고 있어, 불법쟁의행위에 가담한 근로자 개인이 사용자에게 발생한 거액의 손해 전액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하는 가혹한 측면이 있다.
그런 배경에서, 이번 발의된 노동조합법 개정안들을 보면 크게 두가지 내용 즉, (i) 일정한 요건을 갖추면 원청이 하청근로자에 대한 노동조합법상의 사용자에 해당된다고 보는 규정을 신설하는 내용과, (ii) 폭력이나 파괴행위를 제외하고는 근로자 개인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나 가압류를 할 수 없도록 하고 노동조합을 상대로 하는 손해배상청구는 상한액을 정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개정안의 내용은 유럽 국가들의 예를 참고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첫 번째 내용은 만일 입법된다면 사용자 해당 요건의 충족 여부를 둘러싼 다수의 법정 분쟁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데 산별 교섭이 정착된 유럽과 직접 비교가 어려운 데다, 하청업체 변경시 고용승계 문제, 현행 교섭창구단일화 제도 등과 함께 다뤄야 할 난이도가 높은 사안으로 판단된다.
두 번째 내용은 당장 '왜 근로자의 불법쟁의행위 국면에서만 손해배상책임을 면제해 주는지'라는 헌법상 평등권의 문제가 제기될텐데(이를 정당화할 수 있을 정도로 근로3권의 형해화가 심각한지의 문제일 것이다), 일단 문제의 평면은 비교적 단순하므로 참고했다는 유럽 국가들의 상황을 한 번 살펴보는 것도 좋겠다.
영국의 경우 민사면책의 범위를 우리처럼 일반적으로 정하지 않고 한정적으로 열거하는 범위에서만 면책하고, 쟁의행위가 적법하기 위한 요건, 특히 절차적 요건(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실시하기 전에 사용자에게 사전통지, 찬반투표의 절차, 투표결과의 근로자 및 사용자에의 통지, 파업 전에 사용자에게 통지 등)이 복잡하고 까다로운 관계로, 불법쟁의행위에 해당될 위험이 높다.
예를 들어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앞둔 사전통지에는 투표할 근로자의 인원 수(업무분야별, 근무장소별로 각각 인원 수를 구분할 것)를 기재해야 할뿐만 아니라 해당 인원수가 어떤 근거로 산출된 것인지도 설명해야만 하는데 그러한 설명이 누락되었다는 이유만으로도 불법쟁의행위가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적법한 쟁의행위에 참가했다고 하더라도 파업시작일로부터 12주 동안에 대해서만 파업을 이유로 한 해고가 부당한 해고로 인정받고, 위법파업이나 12주를 넘어선 적법파업 참가자에 대한 해고는 원칙적으로 불공정해고규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용자는 대부분의 경우 쟁의행위의 금지를 구하는 가처분신청 절차를 이용하고 있고, 많은 경우에 인용되며 노동조합이 법원의 금지명령을 위반하면 법정모독죄로 처벌(주로 벌금형)을 받기 때문에 이를 따른다고 한다.
영국의 현행법상 손해배상청구는 노동조합 및 그 조합원을 상대로 제기할 수 있지만, 근로자 개인의 책임은 어디까지나 그 근로자의 근로제공 거절로 인하여 생기는 손해에 한정된다. 또한 노동조합의 손해배상액에는 노동조합의 규모에 따라 차등을 둔 상한액이 설정돼 있어서, 조합원 수 5000명 미만이면 4만 파운드까지(약 6337만원), 10만명 이상이면 100만 파운드까지(약 15억 8423만원)만 배상을 명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상한액 규제는 (i) 신체상해, (ii) 재산의 소유, 점유, 사용에 관한 의무 위반 등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그런데 실제로는 손해배상청구는 거의 제기되지 않고 있어서 1988년 이후 보고된 사례가 없다시피 하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영국의 경우 노동조합의 손해배상액의 상한액을 정한 점과 조합원 개인의 배상액을 그가 야기한 손해에 국한하는 점에 있어서 근로3권 보호의 차원에서 시사점이 있어 보인다. 한편으로, 영국에서 노동조합 손해배상의 상한액은 폭력, 파괴행위에 국한하지 아니하고 재산의 소유, 사용에 관한 의무 위반의 경우에도 적용하지 않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폭력이나 파괴에 의하지 않고도 생산시설을 점거하는 형태로 사용자에게 거액의 영업손실을 발생시킬 수 있다. 이점에서 금번 발의 노동조합법 개정안 내용 중 폭력이나 파괴행위에 의하지 않는 재산권 침해 전반을 모두 면책하거나 상한액을 정하는 부분은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아울러, 근로자 개인의 손해배상책임을 아예 면제하는 방법보다는 손해 전체에 대해서 책임을 지우는 기존 공동불법행위책임 법리를 제한 해석하는 방향으로 운용함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프랑스에서는 쟁의행위에의 참가 여부를 개인의 기본권으로 파악해서 쟁의행위의 적법성을 넓게 인정하면서(살쾡이 파업, 동정파업, 권리분쟁, 하청직원의 원청에 대한 직고용 요구 쟁의행위 모두 적법함), 파괴적이거나, 파업 참가 근로자들의 임금 손실액에 비하여 사용자의 손실이 지나치게 큰 경우 등에는 위법한 파업으로 본다. 1982년에 노조와 조합원의 민사책임을 면책하는 입법이 이루어졌으나 이내 평등권 등 위반으로 위헌판결을 받았고, 이후 법원은 노조와 조합원의 민사책임을 제한하는 방향의 판례법리를 발전시켰다. 즉, 노동조합이 공식적으로 위법행위를 지시하지 않는 한 조합원들의 행위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행위에 불과하여 노동조합은 책임을 지지 않고, 조합원 개인은 고의 또는 중과실이 인정되는 경우에 자신의 행위로 인하여 발생한 손해 부분만에 대하여 배상책임을 지며(연대책임의 배제) 이때 인과관계를 엄격하게 심사한다. 그 결과 노동조합과 조합원의 민사책임은 법률상 가능하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특별한 사안에서 제한적인 금액에 한하여서만 인정된다고 한다.
이와 같이 프랑스에서는 별다른 특별법 없이 일반 민사법리를 판례법으로 수정함으로써 노동조합과 조합원의 민사책임을 제한하는 결과를 도출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에게도 참고가 될 수 있겠다.
독일은 산별노조와 아울러 각 기업에 조직된 사업장위원회가 활발히 기능하는 듀얼 시스템으로, 후자(파업권이 없다)가 노사분쟁의 상당부분을 흡수하기 때문에 파업이 적은 편이고 불법파업도 드물다고 한다. 불법쟁의행위에 대하여 노동조합과 조합원들이 연대책임을 질 수 있지만, 실제 사례는 드물어서 주요 케이스를 찾으려면 1980년,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고 한다.
법안 한 건으로 간접고용을 둘러싼 문제가 말끔히 해결된다면 좋겠지만 아마도 현실은 더 많은 사회적 대화를 필요로 할지 모르겠다. 간접고용을 아우르는 산별교섭체제의 구축과 고용승계의 제도화를 함께 논의해야 하지 않을까.
정리=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