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건전성을 악화시키는 무리한 정책을 펼치면 시장의 걱정이 많아진다는 게 영국 사례의 교훈입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4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영국의 감세안 일부 철회와 관련해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재정건전성을 지키는) 바로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영국의 (소득세) 최고세율 폐지 계획 철회를 보면서 현 정부의 경제정책방향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느냐”는 야당 의원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영국 정부는 지난달 연소득 15만파운드(약 2억4200만원) 이상 고소득자 최고세율 인하(45%→40%), 법인세 인상(19%→25%) 백지화, 인지세(부동산 취득·등록세) 인하 등을 담은 감세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후 국채 가격이 폭락하고 파운드화 약세로 이어지는 등 금융 불안이 심화되자 3일(현지시간) 이중 고소득자 최고세율 인하안을 거둬들였다.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다주택자 종합부동산세 완화 등을 담고 있는 윤석열 정부의 첫 세제개편안을 ‘부자감세’로 규정해온 더불어민주당은 영국의 행보를 부자감세 철폐의 근거로 들고 나섰다.
하지만 영국의 사례는 감세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재정건전성의 중요성을 재확인한 계기로 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재정준칙 마련 등 재정 개혁에 더 고삐를 죄라는 메시지라는 것이다. 김학수 한국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재정건전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한 국가의 정책 선택권마저도 제한된다는 걸 영국이 보여줬다”고 말했다. 20년 가까이 재정적자를 이어온 영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은 2020년 기준 102.6%로 한국(48.9%)의 두 배가 넘는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영국 감세안 논란의 포인트는 감세안 자체가 아니라 거기에 걸맞은 지출 구조조정이 없었다는 것”이라며 “다른 감세안을 유지한 의미를 더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영국 정부는 감세안 중 법인세 인상 백지화와 인지세 인하는 건드리지 않았다. 쿼지 콰텡 영국 재무장관은 3일 이에 대해 “기업 지원과 저소득층 세 부담 감면 등 우리의 성장 계획은 더 번영하는 경제를 위한 새로운 접근법”이라고 밝혔다. 달러 대비 파운드화 가치는 이날 1.38% 급등하며 안정세를 찾았다.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의 대선 공약이었던 전 국민 대상 기본소득제를 주거·의료 등으로까지 확장한 ‘기본사회’를 핵심 기조로 밀고 있다. 매년 1조원 이상의 예산을 초과 생산된 쌀 매입에 쓰게 하는 양곡관리법 개정도 주도하고 있다. 이런 무분별한 포퓰리즘성 재정 정책을 지양하라는 게 영국 감세안 논란의 진짜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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