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지구촌 시대, 국제교류가 늘어나면서 기업들의 해외 활동이 늘어나고 그에 따라 외국과 관련된 요소가 있는 법률관계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노동법 영역에서도 예외가 아니어서, 우리나라 기업들이 다른 나라에 진출하면서 그 나라 사람들을 고용하거나, 그 나라에 상주하는 우리나라 국적자들을 고용하거나, 전적이나 전출의 형식으로 우리나라 기업 소속 직원들이 다른 나라 사업장에서 근무하게 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근로자들이 외국에서 근무하는 경우 그 근로자들의 근로관계에 대해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을 적용할 것인지, 아니면 해당 국가의 노동법을 적용할 것인지가 실무상 문제가 된다.
외국과 관련된 요소를 가진 근로관계에 관해 어떤 나라의 법을 적용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문제를 근로관계에 대한 준거법(準據法) 결정의 문제라고 하는데, 이는 생각보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법의 장소적 적용범위에 대해서는 전통적으로 속지주의, 속인주의 등의 원칙들이 논의되고 있는데, 외국과 관련된 요소를 가진 근로관계의 준거법 결정의 문제는 기존에 논의되던 이러한 원칙들의 기계적인 적용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고 국제사법의 해석을 통해 결정되는데, 그 논의과정이 다소 복잡하다.
국제사법은 외국과 관련된 요소가 있는 법률관계에 관하여 국제재판관할과 준거법을 정함을 목적으로 하는 법으로(제1조), 외국과 관련된 요소가 있는 근로관계에 대해서도 당연히 적용된다. 국제사법에 의하면 외국과 관련된 요소가 있는 근로관계에 대한 적용될 준거법을 결정하는 대원칙은 준거법에 대한 근로관계 당사자의 진정한 의사가 무엇인지 살피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그것이 분명치 않은 경우에는 개별 법률관계 유형에 관련된 국제사법 규정에 대한 해석에 의해 준거법이 결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법원이 국제적인 요소가 있는 근로관계에 적용될 준거법을 판단함에 있어서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은 당사자의 의사이다. 국제사법 제45조 제1항은 “계약은 당사자가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선택한 법에 의한다. 다만, 묵시적인 선택은 계약내용 그밖에 모든 사정으로부터 합리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경우에 한한다”라고 규정하여, 국제계약의 준거법 결정에 있어서 당사자 자치를 원칙으로 선언하고 있다. 이 규정은 외국적 요소가 있는 법률관계에 관한 계약의 준거법을 결정하는 일반적인 규정이므로, 외국적 요소가 있는 근로계약에 대해서도 적용된다. 따라서, 근로자와 사용자가 근로계약을 체결하면서 준거법을 합의한 경우에는 합의한 나라의 법이 근로관계에 적용되는 일차적인 준거법으로 고려된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우리나라 기업들이 외국에서 근무하는 근로자들에게 외국법을 적용하려고 할 때에는 일차적으로 근로계약서에 준거법을 해당 국가의 법으로 정하여야 한다.
만약 당사자가 준거법을 선택하지 않은 경우에는 그 계약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국가의 법이 준거법이 된다(국제사법 제46조 제1항). 다만 이는 계약관계의 준거법에 대한 일반규정이고, 근로관계에 대해서는 국제사법 제48조가 우선적으로 적용된다. 국제사법 제48조 제2항에 의하면 당사자가 근로관계에 대해서 준거법을 선택하지 아니한 경우에 근로자가 일상적으로 노무를 제공하는 국가의 법이 준거법이 된다. 즉, 근로자와 사용자가 근로관계에 적용될 준거법을 합의하지 않은 경우에는 근로자가 일상적으로 노무를 제공하는 국가의 법이 적용된다.
문제는 근로관계 당사자가 준거법에 대해 합의를 하더라도 반드시 그 합의가 우선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국제사법은 당사자가 준거법을 선택한 경우에도 근로자가 일상적으로 노무를 제공하는 국가의 강행규정에 따라 근로자에게 부여되는 보호를 박탈할 수는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제48조 제1항). 따라서 당사자가 준거법을 선택하지 않은 경우 뿐만 아니라 당사자가 준거법을 선택한 경우라도 당사자가 선택하지 않은 다른 나라가 일상적으로 노무를 국가인 경우에는 그 나라의 강행규정이 적용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때 '일상적으로 노무를 제공하는 국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기간을 어떻게 해석할지가 문제가 되는데, 근로관계가 유지되는 전체 기간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렇게 해석하지 않고 특정 시점에 어느 나라에서 노무를 제공하는지를 기준으로 준거법을 판단하면 단기간의 출장 등에 있어 준거법이 계속 바뀌는 불합리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본다. 근로자가 우리나라 법인 소속으로 우리나라에서 10년 정도를 일하다가 사우디아라비아 공사현장에 파견되어 3년 정도 일을 하다가 귀국하였다고 가정해보자. 이 때 근로자와 사용자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일을 하는 기간 동안에 사우디아라비아 법을 준거법으로 하겠다는 합의를 한 경우에는 그 합의대로 당시의 근로관계에 대해서는 사우디아라비아 법이 적용될 가능성이 생긴다. 다만 문제가 되는 쟁점에 대해 사우디아라비아의 노동법의 보호수준이 우리나라의 근로기준법 강행규정의 보호수준보다 낮은 경우에는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이 적용될 수도 있다. 우리나라가 일상적으로 노무를 제공하는 국가로 해석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위와 같이 근로관계에 외국적 요소가 있는 경우에는 일상적으로 노무를 제공하는 국가의 법이 적용될 가능성이 높고,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외국에 파견된 우리나라 근로자들의 근로관계에도 보호수준이 높은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의 강행규정이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근로관계 당사자 사이에 준거법 합의를 하는 것은 분명히 의미가 있다. 국제사법 해석론이 아직 정립되는 단계에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강행규정이 아닌 규범에 대해서는 당사자 합의가 우선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김동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노동그룹장/중대재해대응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