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관료 출신 저명 경제학자인 노구치 유키오 히토츠바시대 명예교수
(사진)는 "엔저(低)라는 마약에 계속 의존해 온 일본 경제가 1997년 외환위기(IMF 사태)를 계기로 산업구조를 재편한 한국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구치 교수는 최근 "일본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조만간 한국에 역전되고, 주요 7개국(G7) 회원국이 일본에서 한국으로 바뀌어도 할 말이 없다"라는 분석으로 일본 사회에 충격을 준 인물이다.
노구치 교수는 2일 아사히신문과 인터뷰에서 24년 만의 최저 수준을 기록한 엔화에 대해 "자국의 통화 가치 하락이 국가에 이익일 리 없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IMF 사태를 통해 통화 가치 하락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깨달은 한국은 통화안정 정책 대신 산업구조 개편으로 대처했다"며 "지금 그 성과가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전 총리의 대규모 경기부양책)를 통해 엔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떨어뜨린 일본의 정책을 '마약'에 비유하며 경쟁력 약화의 주범이라고 비판했다. 일본 정부가 엔저를 통해 달러 기준 일본인의 임금을 떨어뜨리는 효과를 노렸다는 것이다.
노구치 교수는 "중국의 공업화에 대응해 일본의 수출경쟁력을 회복시키기 위해 정부가 내세운 전략이 달러 기준 일본인의 임금을 낮춰 제품 가격을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정말 필요했던 산업구조 개편은 미룬채 '엔저'라는 마약을 계속 맞은 결과 일본의 성장력이 약해지고 말았다"고 말했다.
노구치 교수는 "국제적인 기준에서 일본의 임금이 낮아지면 해외의 인재가 일본에 오지 않고 일본의 인재는 해외로 유출된다"며 "일본의 간병 인력 수요가 느는데 외국인 노동자가 오지 않으면 장래 고령화사회는 지옥이 될 것"이라고도 말했다.
엔저가 산업 경쟁력을 심각하게 훼손시킬 것이라고도 경고했다. 노구치 교수는 "일본 기업들은 (수입가격이) 비싸진 고성능 반도체를 사용한 제품을 만들 수 없게 될 수 있다"며 "외국의 재화가 비싸서 살 수 없는 상태가 국익에 도움이 될 리 없다"고 지적했다.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은 일본인이 "엔화를 불신임한 결과" 자산을 해외로 유출하는 자본도피라고 말했다.
노구치 교수는 "일본인들이 '달러와 같은 외화 자산을 보유하지 않으면 위험하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순간 자본도피가 일어날 것"이라며 "(엔화 가치가 떨어질 수록 엔화 자산이 불어나는) 외화자산 보유자는 더욱 엔저를 바라기 때문에 통화가치 하락이 끝없이 진행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달 말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이 24년만에 단행한 엔화 매수 시장 개입도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노구치 교수는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 엔저에 브레이크를 걸었지만 일본은행은 금융완화라는 가속폐달을 밟고 있는 상황"이라며 "또다시 달러 당 145엔까지 떨어진 환율에서 보듯 시장 개입의 효과는 하루도 못 갔다"고 말했다.
그는 "엔저를 막으려면 일본은행이 금융완화를 중단하고 금리를 올리는 방법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또 "내년 4월 누가 새로운 일본은행 총재가 되는 지가 일본 경제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라며 "엔화 가치 보호라는 중앙은행의 가장 중요한 임무를 존중하는 인물이 취임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도쿄대 응용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예일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노구치 교수는 일본경제·금융이론 분야의 석학으로 꼽힌다. 경제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100여 권의 책을 출간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