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이 부산 기장군 고리원전(고리 2·3·4호기, 신고리 1·2호기)에 사용후 핵연료를 보관할 지상 저장시설을 새로 건립하기로 하면서 논란이 예상된다. 경북 경주 월성원전 등 과거 사례에 비춰볼 때 주민들이 “사실상 영구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이 들어서는 것”이라며 거세게 반대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정부는 “임시저장시설에 불과하다”며 달래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속도를 내온 윤석열 정부의 원전 확대 정책이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2030년부터 건식 저장 목표
한수원이 산업통상자원부에 보고한 ‘고리원전 내 사용후 핵연료 저장시설 설치안’은 올해 기본계획을 수립한 뒤 2024년 설계를 마무리하는 일정이다. 2026년까지 인허가를 완료하고 2029년 준공하는 것이 목표다. 2030년부터는 언제든 고리원전 내부 수조(습식 저장시설)에 담긴 사용후 핵연료를 꺼내 건식 저장시설로 옮길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그동안 모든 원전은 습식 저장시설에 핵연료를 쌓아두고 있었는데 포화상태에 가까워지면서 원전 계속 가동을 위해선 건식 저장시설 건립이 불가피한 상황이다.건식 저장시설은 지름 3m, 높이 6.5m의 원통 형태 캐니스터와 길이 21.9m, 폭 12.9m, 높이 7.6m의 직육면체 모양 맥스터 등 두 가지 방식이 있다. 고리원전은 캐니스터를 택했다. 예산은 핵연료를 담을 드럼통 모양의 캐스크 비용, 시설비, 관리비, 예비비 등에 약 5700억원이 책정됐다. 한수원 관계자는 “한빛원전도 내년부터 건식 저장시설 설치 준비를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불투명한 고준위 방폐장 건립
사용후 핵연료를 해결하는 최선의 방법은 고준위 방폐장을 서둘러 짓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1978년 국내에서 원전을 처음 가동한 이후 40년 넘게 해결되지 않고 있는 난제다. 주민 반발이 크다 보니 어느 정부도 선뜻 방폐장 건립 계획을 밀고 나가지 못했다. 논란 끝에 2015년 방사능 시설에서 사용한 장갑, 부품 등 중·저준위 방폐물 처분 시설만 경주에 들어선 상태다. 고준위 폐기물인 사용후 핵연료를 영구 처분하는 시설은 아직 국내에 없다.정부는 작년 12월 2차 고준위 방폐물 관리 기본계획을 발표하고, 2060년까지 고준위 방폐장을 짓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치적 민감성을 고려할 때 계획대로 될지는 불확실하다. 그러다 보니 건식 저장시설이 설치되는 지역 주민들의 우려가 크다. 고준위 방폐장이 건립되지 않으면 임시저장시설이 결국 영구적으로 방폐장 기능을 할 수 있어서다. 김소영 사용후 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장은 “정부가 사용후 핵연료 처분장을 지을 수 있을지, 시민사회의 신뢰가 아직 충분치 않다”며 “사용후 핵연료 처분장 설치는 한두 번의 형식적 공론화로 끝낼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동의할 수 있는 논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사용후 핵연료, 원전 확대의 걸림돌
결국 주민들의 수용 여부가 관건인데, 만만치 않은 과제다. 고리원전은 부산 기장군 월내역에서 2㎞ 거리에 인접해 있다. 이 때문에 330만 명 부산시민을 어떻게 설득할지가 변수다. 일각에선 건식 저장시설은 원자력안전법 관계시설 규정에 따라 공론화 없이 설치가 가능하다고 주장하지만, 이 경우 더 큰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1991년부터 건식 저장시설을 지은 월성원전에서도 증설에 반대하는 주민과 정부가 큰 갈등을 빚었다. 작년 3월 맥스터 7기를 증설하는 과정에서 논란이 컸다. 공론화 과정에서 지역 주민 81%가 맥스터 증설에 찬성했는데, 찬성 여론이 조작됐다는 문제 제기가 나왔기 때문이다. 정정화 당시 사용후 핵연료 재검토위원장은 사퇴 이후 낸 책에서 “위원회가 만든 설문지가 맥스터 확충을 유도하는 문항으로 무단 변경됐다”고 주장했다.
▶고준위 폐기물
방사능이 매우 강한 폐기물. 사용후 핵연료나 핵연료 재처리 과정에서 나오는 폐기물. 스테인리스스틸 용기에 넣어 30~50년간 저장하고 이후 깊은 지층이나 바닷속에 보관·처분한다.
▶저준위 폐기물
미량의 방사능을 띠고 있지만 인체에 위험이 거의 없는 폐기물. 실험실 폐기물, 보호복 등이 대표적이다. 얕은 지층에 묻어 처리한다.
이지훈/김소현 기자 li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