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빈관 신축 계획과 한·일, 한·미 정상회담 진행 과정에서 보여준 대통령실의 어설픈 일 처리는 윤석열 대통령의 태풍 ‘힌남노’ 대응과 서민 행보로 끌어올린 국정 지지율을 무위로 돌렸다. 거기에 대통령이 자신의 말이 갖는 무게를 잠시 잊은 사이 거친 언어가 포착됐다. 물론 윤석열 정부 국정 지지율을 깎아내린 원인에는 야당과 언론의 발목잡기와 성과 폄훼가 핵심에 있다. 하지만 야당의 비판과 언론 감시가 일상화한 이상 국정은 더 철저하고, 세련됐어야 했다. 참모의 미숙함이 국정 지지율 하락으로, 지지율 하락이 국정 동력 상실로, 그리고 국정 위기로 이어질 상황이 두렵다.
국정 동력 상실이라는 위기로 가지 않기 위해 윤 대통령은 무엇을 해야 할까. 첫째, 아직도 목표가 없고 정부의 미래 비전과 발전 전략이 분명하지 않다. 국민이 나라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불안해하고 있다면 대통령은 국민이 마음으로 공감할 수 있는 미래 비전을 만들어 제시하고 그 비전을 높이 들고 힘차게 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혹자는 대통령이 강조해온 ‘자유’가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자유’는 가치이지 비전이 아니다. 또 국민이 윤석열 검찰총장을 지지했던 이유는 공정한 법치와 정의 추구였지 자유가 아니었다.
윤 대통령에게 ‘자유’는 가치관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제20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인생 책’ 세 권을 추천해달라는 요청이 있었을 때 당시 윤 후보자는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 대런 애쓰모글루와 제임스 로빈슨의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를 택했다. <자유론>은 사상과 언론의 자유에 대한 고전이고, <선택할 자유>는 자유 시장의 중요성을 강조한 명저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는 번영으로 이끄는 요인으로 ‘포용적 정치·경제 제도’의 존재를 지적하며 사유재산권 보장과 공정한 경쟁, 그리고 신기술과 기능에 대한 투자에 자유가 중요함을 서술한 책이다. 그 때문에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자유’를 35차례나 인용했으며, 8·15 경축사에도 ‘자유’를 33번 언급했다. 지난 20일 유엔총회 연설에서는 ‘자유와 가치 공유국의 유엔 중심 연대’를 제시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자유’가 국민에게 울림을 줬다는 증거는 찾기 어렵다. 자유가 중요한 가치지만 국민에게 감동을 주지 못한다면 ‘자유’ 대신 새로운 가치와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대통령은 ‘실용’도 언급했지만, 실용은 방법론일 뿐 미래 비전이 아니다. 당장이라도 국민과의 대토론에 기초해 ‘대한민국 미래 비전 2030’을 만들고 창의적이고 치밀한 전략을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 정부가 나아갈 방향을 가늠하고 국민이 따를 것이다.
둘째, 순방에서 돌아온 대통령은 바로 국민 대통합을 위한 협치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지금의 여야 정쟁, 즉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왝더독(Wag the dog) 정치에서 한발 뒤로 물러나 국민 대통합에 전념해야 한다는 말이다. 여당은 전직 당 대표가 자신이 대표했던 당을 불태우고 쪼개고 있으며, 야당은 당 대표 보호를 위해서라면 당 전부를 희생해도 좋다는 식이다. 국민은 없고 정치인 개인 이익만 존재하는 본말전도 정치다.
우리 역사에서 이런 본말전도와 당파 싸움은 항시 국가 위기로 귀결됐다. 동인·서인의 당파 싸움으로 임진왜란을 맞았고, 구한말 세도정치 속에서 나라를 일본에 빼앗겼으며, 해방 후 정치 혼란으로 김일성의 6·25 남침을 허용했다.
이제 다시 정치 분열이 국가 위기로 전환되는 역사를 되풀이할 수는 없다. 애쓰모글루 MIT 교수는 최근 방한에서 “한국의 진짜 문제는 정치 분열”이라고 핵심을 찔렀다.
윤 대통령은 반복되는 파당 정치에서 한발 벗어나 국민에게 희망과 비전을 제시하고 미래 비전을 실천하는 일에만 전념해야 한다. 야당을 끌어안고 함께 가는 협치를 실현하기 위해 ‘담대한 구상’을 제시하고 국민 통합의 길로 들어서야 한다.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약속했던 “위대한 국민, 그 국민의 상식, 그 상식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 법치, 공정의 가치를 세우겠다”는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결연했던 초심으로 돌아가 국정에 매진한다면 지지율은 시나브로 상승할 것이다. 새 정부가 새 출발을 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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