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이 떨어지는 쌀값을 잡기 위해 작년에 생산된 재고미와 올해 햅쌀을 포함해 총 45만t을 올해 안에 사주기로 했다. 수확기(10~12월) 기준 역대 최대 규모로 올해 초과 생산량의 2배에 육박한다. 쌀 매입에 들어갈 예산만 1조원대로, 일각에선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추진 중인 쌀 시장격리(정부매입) 의무화를 막기 위해 과도한 정책을 내놓은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와 여당인 국민의힘은 25일 ‘제4차 고위당정협의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쌀값 안정화 대책’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쌀 시장격리는 국내 수요보다 많이 생산된 쌀을 농협이 사고, 농협이 쌀을 사고 보관하는데 쓴 돈을 정부가 세금으로 보전해주는 제도다. 지난 15일 기준 20kg당 4만725원으로 1년 전(5만4228원)보다 24.9%가 떨어져 관련 통계 작성이 시작된 1977년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떨어진 쌀 가격을 정부 매입으로 반등시킨다는 계획이다.
정부가 매입하기로 한 45만t은 농촌진흥청이 추정한 올해 초과생산량(25만t)보다 20만t이 많다. 정부는 올해 초과생산량에 시장에 남아있는 지난해 생산된 쌀 10만t을 포함한 것보다 더 많은 양을 매입하기로 했다. 통상 당해 생산된 쌀에 한정되는 시장격리 물량에 재고미를 포함시킨 것은 2009년 이후 처음이다. 김인중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은 이날 열린 브리핑에서 “과도하게 하락한 쌀값을 상승세로 전환시키기 위해선 초과 생산량 이상을 물량을 수확기에 전량 시장에서 격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비료 가격 등이 높아진 가운데 쌀값 하락까지 겹치며 어려움을 겪는 농민을 위한 ‘고육지책’이란 게 정부의 설명이지만 비판적인 시각도 만만찮다. 앞서 정부는 식량안보 강화 등을 명분으로 기존에 연간 35만t을 매입해왔던 공공비축미 물량을 올해 45만t으로 늘리기로 결정했다.
공공비축은 양곡 부족으로 인한 수급불안과 천재지변 등 비상시에 대비해 정부가 매년 일정량을 매입해 비축하는 것으로 시장격리와는 별개다. 공공비축까지 포함하면 정부가 올해 안에 매입하는 쌀만 90만t으로 올해 예상 생산량의 23.3%에 달한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정부가 쌀을 매입할 때 드는 비용은 10만t당 평균 2000억원 수준이다. 식량안보 기능이 있지만 공공비축 역시 민간 수요를 넘어서는 초과 생산량을 정부가 매입하는 것이란 점을 감안하면 초과 생산된 쌀 매입에 1조8000억원에 달하는 예산이 투입되는 셈이다.
이번 정부의 대책이 초과 생산된 쌀 전량을 매년 정부가 의무 매입하도록 양곡관리법을 개정하려는 민주당을 과도하게 인식한 결과란 지적도 나온다. 민주당은 양곡관리법 개정을 10월 정기국회에서 처리할 중점 과제로 선정하며 처리 강행을 예고한 상황이다.
쌀값 안정화는 농촌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여당 입장에서도 가져와야 할 ‘아젠다’다. 정부는 당장 예산 투입 규모는 클 수 있지만 당초 정부의 재량에 맡겨져 있던 시장격리 여부가 의무화될 경우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주면서 쌀 공급 과잉 구조가 심화될 것을 더 우려하고 있다. 김 차관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분명히 공급과잉이 심화될 것이고 재정 부담도 커질 것"이라며 "농업의 미래를 위한 투자를 저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