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이 발칵 뒤집혔다. 지난달 바이에른주(州)정부가 고등학교 독일어 교과과정을 개편하면서 필독서 항목을 없앴기 때문이다. 필독서라고 해봐야 달랑 한 권.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희곡 <파우스트>였다. 결국 <파우스트>를 억지로 읽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였다. 주정부는 “교사가 참고도서로 채택할 수 있다”고 해명했지만 각계의 항의가 이어졌다. 독일 언론은 ‘파우스트 공황(Faust-Krise)’이라고 했다. <파우스트>가 독일 문학사에서 지니는 상징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유명한 독일 문학의 거장 괴테는 1773년부터 1831년까지 장장 58년간 <파우스트>를 썼다. 1만2111행짜리 대작이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라도…’라는 이야기의 원조가 <파우스트>다.
주인공 파우스트는 연로한 학자다. 그는 아무리 공부해도 세상의 진리를 깨칠 수 없다며 절망한다. “철학 법학 의학 신학까지 열성을 다해 속속들이 연구했다. 그런데 나는 가련한 바보구나. 우리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뿐이다.”
고뇌하는 파우스트 앞에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나타난다. 현세에서 마음껏 쾌락을 누리게 해줄 테니 훗날 저승에서 자신의 시중을 들라고 제안한다. 파우스트는 ‘악마의 계약’을 수락하며 조건을 하나 건다. “내가 어느 순간 ‘머물러라, 너는 정말 아름답구나!(Verweile doch! Du bist so schn!)’ 하고 말한다면, 그대로 나는 망해도 좋다.” 극강의 만족감을 선사하면 죽은 뒤에 영혼을 넘겨주겠다는 얘기였다.
악마는 내기에서 이기기 위해 파우스트를 쾌락의 길로 안내한다. 그런데 쾌락은 고통을 동반했다. 마녀의 약으로 젊어진 파우스트가 소녀 마르가레테와 맺은 사랑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모두를 위한 지상낙원을 짓겠다며 대규모 간척사업을 벌이지만 무고한 노부부를 죽음으로 내몬다.
<파우스트>의 매력은 이런 역설에 있다. 다시 나이를 먹고 두 눈이 멀어버린 파우스트는 악마가 무덤을 파는 소리를 듣고서 지상낙원을 향한 공사가 착착 진행 중인 것으로 오해한다. 급기야 금기의 문장을 내뱉는다. “머물러라, 너는 정말 아름답구나!”
이후의 전개는 메피스토펠레스의 기대와 사뭇 다르다. 파우스트의 영혼을 데려가는 건 악마가 아니라 천사들이다. 악마의 유혹에 빠져 방황하던 인간이 승천하다니. 어리둥절한 독자라면 작품 초반 신의 음성을 되짚어보자. “인간이란 노력하는 한 방황하기 마련이다.”
책은 권선징악이라는 단순한 공식을 비껴간다. <파우스트>는 이상을 좇는 인간의 노력과 그 좌절까지도 축복한다. 조우호 한국괴테학회장(덕성여대 독어독문학과 교수)은 “참된 삶에 대한 우리의 고민과 분투를 긍정하는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괴테는 작품 속 시인의 입을 빌려 이렇게 노래했다. “천편일률적으로 흘러가는 삶을 물결치게 해주는 사람은 누군가요. 누가 불타는 저녁노을에 깊은 뜻을 부여하나요. 그건 인간의 힘입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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