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1400원대를 돌파했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3연속 자이언트 스텝(0.75%포인트 금리인상)을 밟으면서 고강도 긴축 기조를 재확인한 점이 환율 상승 요인으로 작용했다.
한미 금리가 역전되면서 환율이 1434원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 가운데 정부는 고환율에 대한 경계감을 분명히 드러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빅스텝(0.5%포인트 금리 인상)에 나설 수 있음을 시사했다.
22일 오전 9시31분 현재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10.2원 오른 1404.4원에 거래 중이다. 환율이 1400원대를 돌파한 것은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3월 31일(고가 기준 1422.0원) 이후 13년 6개월여 만에 처음이다.
이날 Fed가 세 번 연속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하면서 국내 기준금리(2.5%)와 미국(3.00∼3.25%)의 기준금리는 다시 역전됐다. Fed가 예상보다 더 매파적(통화긴축 선호)인 모습을 보이며, 고강도 긴축 정책을 시사한 점도 원·달러 환율에 상승 압력을 가했다.
Fed는 FOMC 위원들의 금리 전망을 보여주는 점도표에서 올해 말 금리 수준을 4.4%로, 내년 말 금리 수준을 4.6%로 조정했다. 지난 6월 점도표의 3.4%, 3.8%에서 대폭 올라간 수준으로, 시장의 예상을 큰 폭 웃돌았다.
모건스탠리는 "점도표가 4.4%에 모여 있는 것은 올해 남은 두 번(11월·12월)의 FOMC에서 자이언트스텝과 빅스텝이 단행된다는 것을 거의 확실히 말해준다"며 "점도표는 인플레이션이 계속 올라간다면 추가로 상향 조정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은 FOMC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물가상승률이 (연준 목표치인) 2%를 향해 내려가고 있다고 매우 확신하기 전에는 금리 인하를 고려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골드만삭스는 "이날 파월 의장의 발언은 인플레이션이 매우 높고 이를 낮추기 위해서는 고통이 필요하다고 했던 지난 잭슨홀 미팅에서의 발언과 유사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지적했다.
HSBC는 "Fed와 다른 중앙은행들의 긴축 기조가 이어지면서 글로벌 경제가 둔화될 우려는 커졌다"며 "위험회피 심리가 강화되며 미 달러화의 강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가 다시 역전되면서 원·달러 환율이 최고 1434원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한국은행이 베이비스텝(0.25%포인트 금리 인상)을 밟을 경우 미국과 한국의 전년 동월 대비 기준금리 변동 폭 격차는 1%포인트만큼 벌어지게 된다"며 "환율 상승률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2.4% 확대돼 1434.2원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추광호 한경연 경제정책실장은 "민간의 금융방어력이 취약한 상황이라 한은은 미국의 금리 인상 속도를 따라가기 어렵다"며 "한미 간 기준금리 역전에 따른 환율 상승압력을 완화하기 위해 무역수지 관리 중심의 외환시장 안정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도 환율이 1400원대를 돌파한 데 따른 경계감을 유지하며, 쏠림현상이 나타날 경우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이날 17일 만에 열린 비상거시경제금융(이하 비상거금) 회의를 주재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환율 상승에 따른 투기 심리가 확대되는 등 일방적인 쏠림에는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며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필요한 순간에 단호하고 신속하게 대응한다는 방침을 엄격히 견지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비상거금 회의에 함께 참석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베이비스텝 조건에서 벗어났다"며 빅스텝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이 총재는 "Fed의 최종금리에 대한 시장 기대가 4% 수준, 그 이상으로 상당폭 높아졌다"며 "우리(한은)는 4%에서 안정되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기대가 많이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금통위원들과 함께 이런 전제조건 변화가 성장 흐름, 외환시장 등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검토해 기준금리 인상 폭과 시기 등을 결정하겠다"고 덧붙였다.
채선희 한경닷컴 기자 csun0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