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대 호황 누렸지만…
택배·신선식품 배송 증가로 사상 최대 호황을 누렸던 물류센터 사업에 ‘빨간불’이 켜졌다. 건축비를 구하지 못해 공사를 중단하거나 완공 후에도 공실률이 높아 매각을 못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물류센터를 담보로 사업장마다 수백억~수천억원을 빌려 놓은 상태여서 사업 부실 문제가 금융권 전체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물류센터 사업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아는 사람만 아는 ‘로또’ 사업이었다. 사업 구조가 ‘일확천금’을 연상케 한다. 우선 10억~20억원의 자본금으로 법인을 세운 뒤 물류센터를 지을 수 있는 토지를 물색한다. 이후 토지 매매 가격의 10% 정도인 계약금을 나눠 낼 수 있는 투자자를 모집한다. 토지 계약이 이뤄지면 사업은 일사천리로 흘러간다. 토지를 담보로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고, 동시에 물류센터 인허가 작업을 진행한다.
물류센터 공사가 시작되면 본격적인 투자금이 들어온다. 증권사와 은행, 보험사 등에서 조달하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 주된 자금원이다. 부동산 PF란 사업성과 장래의 현금흐름을 바탕으로 금융회사가 대출해주는 금융 기법을 말한다. 증권사 PF 담당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완공 전에 임차인을 다 구할 수 있을 정도로 수요가 많았다”며 “이후 매각이 이뤄지면 시행사는 투자금의 열 배 이상을 손에 쥘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최근 상황이 급변했다. 수도권 B 사업장이 대표적 사례다. 이 사업장 대표는 자본금 15억원으로 물류센터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 과정에서 토지 잔금과 공사비, 금융비 등의 명목으로 1200억원의 부동산 PF 대출을 받았다. 완공 후 임대가 잘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현재 공실률은 80%에 달한다. 이곳 대표는 “공실률이 20% 이하로 떨어지지 않으면 매각 자체가 어렵다”며 “월 이자만 5억원에 달해 투자금을 일부 떼이더라도 낮은 가격에 매각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재비 폭등에 고금리까지 ‘설상가상’
물류센터 개발 사업이 갑자기 어려워진 이유는 건축비 증가와 금리 상승이다. 건축비는 지난해 기준 3.3㎡당 350만원 수준에서 올해 500만원으로 40% 이상 급등했다. 한 시행사 대표는 “예상보다 건축비가 많이 들어 추가 대출을 해야 하는데 대출이 나오지 않고 있다”며 “여러 공사장이 멈춘 이유”라고 했다. 한 증권사 PF팀 관계자는 “물류센터 파산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자금을 추가로 내줄 금융회사는 많지 않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금융감독원이 지난 7월 PF 대출과 관련해 건전성 강화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도 자금 경색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이자율도 치솟고 있다. 부동산 PF 대출 이자(선순위 기준)는 최근 연 8~9%로 지난해(연 4% 안팎)와 비교해 두 배 수준으로 올랐다. 부동산 종합서비스 기업 관계자는 “이자율이 두 배로 오른 건 물류센터의 사업성이 절반으로 떨어졌다는 얘기”라며 “올해 사업권 매각 문의만 10곳 이상 들어왔다”고 말했다.
물류센터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는 것도 문제다. 세빌스코리아에 따르면 올해 전국 물류센터는 488개로 2019년(295개) 대비 65.4% 증가했다. 2024년까지 전체 물류센터의 53.2%인 260개가 추가로 지어진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전문성도 없이 물류센터 개발에 뛰어드는 사업자가 급증했다”며 “경쟁력이 없는 사업장은 매각이 쉽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대출 부실 정황은 벌써 나타나고 있다. 증권사의 부동산 PF 대출 연체율은 1분기 4.7%로 2019년(1.3%) 대비 세 배 이상으로 높아졌다. 2분기와 3분기엔 이 비율이 더 증가했을 것이란 게 업계 분석이다.
장강호/김우섭 기자 callm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