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대표하는 전자기업 도시바가 해외에 팔리는 것을 막기 위해 일본 기업들이 힘을 합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의 대형 전력회사인 주부전력과 종합 금융그룹인 오릭스 등 복수의 일본 기업이 도시바 인수전 참여를 검토 중이라고 18일 보도했다. 도시바 인수전의 주요 후보 가운데 하나인 일본산업파트너스(JIP)가 10곳이 넘는 일본 기업에 참여를 요청하면서다.
JR도카이 등 대형 철도회사에도 인수전 참여를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들이 JIP의 요청을 받아들이면 도시바 인수전에는 일본의 대형 철도, 전력, 금융회사들로 구성된 컨소시엄이 새로 등장하게 된다. 컨소시엄에 참여하는 기업은 각각 수십억엔에서 1000억엔 가량을 출자할 것으로 예상된다.
도시바는 회사 지분 25% 이상을 보유한 외국계 행동주의펀드와의 분쟁을 마무리하기 위해 지난해 회사 분할을 추진했다. 하지만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자 분할안을 철회하고 공개매각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6월 예비입찰에는 10곳의 인수후보가 참여했다. 도시바 이사회는 7월19일 JIP와 미국 PEF인 베인캐피털, 영국 CVC캐피털파트너스, 캐나다 인프라 전문 펀드인 브룩필드 등 네 곳을 적격인수후보(쇼트리스트)로 선정했다. 네 곳의 인수후보 가운데 유일한 일본 자금인 JIP는 일본 국부펀드인 일본투자공사(JIC)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1차 관문을 통과했다.
JIP는 일본 3위 금융그룹인 미즈호파이낸셜그룹과 일본 최대 통신회사인 NTT의 자회사 NTT데이터, 컨설팅회사인 베인앤드컴퍼니재팬이 공동 설립한 일본계 PEF다. 2014년 미즈호파이낸셜그룹이 보유 지분을 매각하면서 독립 PEF가 됐다.
지금까지는 베인캐피털과 같이 자금력이 절대 우위인 글로벌 PE의 우세가 점쳐졌다. 베인캐피털은 2018년 SK하이닉스와 공동으로 도시바의 메모리반도체사업부인 도시바메모리(현 키오시아홀딩스)를 인수한 경험도 있다.
자금력이 약점으로 지적됐던 JIP가 일본 대기업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면 단번에 유력 후보로 올라선다는 분석이다. 원자력발전소 등 경제안보 관련 사업을 운영하는 도시바를 인수하려면 일본 정부의 승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도시바는 이르면 이달말 본입찰을 실시할 계획이다.
일본의 철도, 전력, 금융회사들이 도시바 인수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본업과의 깊은 연관성 때문으로 분석된다. 도시바는 원자력발전 및 화력발전 기기의 제조와 보수 사업을 운영한다. 철도 사업 부문에서도 차량 구동 전원 시스템, 배터리, 운행관리시스템 관련 제품을 다수 생산한다.
상당수 고객 기업들은 해외 PE에 매각되는 상황을 반기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도시바는 자체 기술을 기반으로 고객의 개별적인 요구에 맞춰 개발하는 제품이 많기 때문이다. 올 초에는 일본 최대 윤전기 제조회사인 도쿄기계제작소가 홍콩계 사모펀드(PEF)의 적대적 인수 위협에 처하자 요미우리신문 등 33개 신문사가 회사를 공동 인수한 사례가 있다.
인수후보들은 대주주의 보유 지분을 인수하면 잔여 지분의 공개매수를 실시해 도시바를 상장폐지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도시바의 현재 시가총액은 2조1882억엔(약 21조2616억원)이다. 경영권 프리미엄을 감안한 전체 인수가격은 3조엔에 달할 전망이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