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정부에서 들려오는 이야기 뭐 없나요. 아무거나 좋습니다."
올해 5월 대선 직후 포스코그룹 대관 관계자들은 전전긍긍했다. 새 정부에서 '수장 교체론'이 불거질까 촉각을 곤두세웠다. 글로벌 철강업체로 떠오른 포스코그룹은 임기를 채운 역대 회장이 한 명도 없다. 검찰 수사 등 정부 압박에 밀려 모두 임기 중도에 자리에서 내려왔다. 민간기업이지만 포스코를 '대선 전리품'으로 여기는 인식이 정치권과 정부에 만연한 결과다.
정부가 지난 14일 태풍 피해로 생산에 어려움을 겪는 포스코에 책임을 묻기로 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태풍 피해를 키운 것과 관련해 지배구조 문제도 언급했다. 이번 사태를 빌미 삼아 최정우 회장 체제를 흔들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최정우 회장 이전 포스코 수장 8명 가운데 임기를 모두 채우고 퇴임한 인물은 한 명도 없었다. 전임 권오준 8대 회장의 경우 2018년 4월 임기를 2년 남기고 돌연 사퇴 의사를 밝혔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11개월 만이다. 당시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이 네 차례 해외 방문에 나서는 동안 포스코 회장이 경제사절단 명단에서 번번이 제외되는 등 심리적 압박이 가해지자 사임 의사를 밝혔다.
포스코 민영화 이후 취임한 이구택 6대 회장, 정준양 7대 회장도 임기 도중 퇴진했다. 이 전 회장은 세무조사 무마 청탁 의혹으로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이명박 정부 출범 1년 만에 물러났다. 이명박 정부 때 선임된 정 전 회장도 박근혜 정부 1년 뒤 물러났다. 그는 배임 혐의로 기소됐으나 무죄를 선고받았다. 민영화 과정에서 수장이었던 유상부 5대 회장은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 ‘최규선 게이트’에 연루돼 유죄를 선고받고 정권교체 한 달만 사퇴했다.
최 회장도 비슷한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번지고 있다. 산업부가 전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연 ‘철강 수해복구 및 수급점검 TF’ 1차 회의가 그 같은 관측의 배경이 됐다. 장영진 산업부 1차관은 이날 TF 회의에 "태풍 힌남노가 충분히 예보된 상황에서도 이런 큰 피해가 발생한 것에 대해 중점적으로 한번 따져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회의 직후 "포스코가 피해를 축소하고 있다"거나 "지배구조와 연결된 문제"라는 정부 관계자들의 발언이 비공식적으로 전해졌다.
재계에서는 이번 침수 피해를 빌미로 포스코 경영에 개입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정부가 그동안 관변단체를 동원해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의 퇴진을 촉구해온 포항시와 함께 협공에 나섰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정작 포항제철소 피해를 키운 것은 포항시라는 일각의 지적도 있다. 포항제철소 침수는 200m 떨어진 하천인 냉천이 범람해 발생했다. 포항시는 2012년부터 2017년까지 냉천에 시행한 하천 정비사업으로 하천 폭이 좁아 들었다. 땅 위에 시멘트 등이 깔리면서 자연 배수 기능이 저하됐다. 냉천 범람이 잦은 만큼 대책을 강구해달라는 지역주민 민원이 많았지만, 포항시가 묵살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