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30조원을 투자한 세계 최대 반도체 생산시설 경기 평택캠퍼스 3라인이 어제 가동에 들어갔다. 경계현 삼성전자 사장은 “미래 반도체 시장 주도권 확보에 핵심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은 이곳에 공장 세 개를 더 지어 총 6개를 가동할 계획이다. SK하이닉스도 15조원을 들여 충북 청주에 신규 반도체 공장을 짓는다. 반도체 경기가 얼어붙고 있지만, 2025년 업황 반등을 노린 ‘역발상 투자’에 나섰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투자는 미래 선점용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문제는 기업의 빠른 의사결정과 투자 속도를 정부와 국회가 따라가지 못한다는 데 있다. 기업들의 선제 투자가 효과를 내려면 법과 제도적 지원이 제때 뒷받침돼야 하는데, 거북이걸음이다. 한국에선 기업이 공장을 건설하려면 정부뿐 아니라 지역 주민과 지방자치단체, 시민·환경단체 등이 겹겹이 쌓아놓은 유무형의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 토지·용수·전기 등 기본 인프라 확보부터 진을 뺀다. 삼성전자는 평택공장에 전기를 댈 송전탑 건립을 둘러싼 지역 주민 갈등을 푸는 데만 5년을 허비했다. SK하이닉스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환경영향평가와 토지 보상 문제로 발표 3년이 지나도록 착공하지 못했다.
정부가 반도체 인력 양성을 위해 대학 정원 규제를 완화하는 등 노력하고는 있다. 하지만 기업에 절실한 설비투자 세액공제 확대, 인허가 기간 단축 등을 담은 ‘K-칩스법(반도체특별법·조세특례제한법 일부 개정안)’은 국회에서 낮잠 자는 신세다. 국민의힘이 법안을 냈지만 야당의 비협조로 심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패스트트랙으로 처리해도 모자랄 판에 시급하지 않다며 뒤로 미룬 야당 행태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렇다고 정부 여당이 책임을 피해갈 순 없다. 야당의 생떼와 지자체 협의 등을 핑계 삼을 게 아니라 사활을 건다는 자세로 매달려야 한다. 520억달러짜리 반도체 지원법을 통과시킨 미국을 비롯해 유럽 일본 대만 중국이 반도체에 올인하고 있다. 대만 반도체 기업의 법인세 부담률은 한국의 절반 수준이다.
경제 안보 시대의 핵심 전략 자산인 반도체산업을 지키고 키워 나가려면 국가와 지자체는 물론 여야 정치권이 한마음이 돼 투자 걸림돌인 대기업 차별 규제와 수도권총량제, 만연한 지역 이기주의를 걷어내야 한다. 관건은 속도다. 더구나 지금은 단순히 불경기가 아니라 복합 위기 상황이다. 골든타임을 놓치면 규제 완화도, 세제 지원도 모두 다 허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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