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후 ‘프리즈 서울 2022’가 열리고 있는 서울 삼성동 코엑스 C, D홀 입구에는 티켓을 샀는데도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이 200m가량 길게 늘어섰다. A, B홀에서 열린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상황도 비슷했다. 인파가 몰리자 갤러리들은 작품 훼손을 우려해 부스 입장 대기선을 표시하고, 가드라인을 쳤다.
‘역대급 태풍’ 힌남노도 ‘역대급 아트페어’ 앞에선 아무런 힘을 못 썼다. 이날 코엑스는 힌남노가 불러온 강한 비바람에도 미술 애호가들로 가득 찼다. 이번에 처음 한국을 찾은 세계 3대 아트페어 프리즈와 국내 최대 아트페어 KIAF 출품작을 눈으로 확인하려는 사람이 그만큼 많았다는 얘기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서울을 문화예술도시로 만들겠다는 청사진이 이번 페어로 인해 매우 빨리 앞당겨졌다”며 “내년 행사는 송현동 부지에서 해보자”고 제안했다.
감상은 프리즈에서, 수집은 KIAF에서
KIAF와 프리즈 일반 공개 첫날인 지난 3일(토요일), 관람객은 두 갈래로 나뉘었다. 작품을 구경하러 온 한국 관람객은 프리즈 쪽에 몰렸다. KIAF에는 상대적으로 외국인이 많았다.원혜경 선화랑 대표는 “곽훈의 1억2000만원짜리 회화 작품이 첫날 팔리는 등 판매 성적은 지난해와 비슷하다”며 “단색화 이후 새로운 한국 작품을 찾는 해외 갤러리스트와 컬렉터들의 문의와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현금 토포하우스 대표는 “KIAF를 프리즈 서울과 공동 개최한 덕분에 국내는 물론 해외 미술애호가들에게 한국 미술을 더 많이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며 “잘 활용하면 한국 화랑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미술시장의 새로운 ‘큰손’이 된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파워는 이번 전시회에서도 확인됐다. 이들이 ‘타깃’으로 삼는 500만~1000만원대 젊은 작가 작품들은 첫날과 둘째날 거의 다 팔렸다. 한 30대 컬렉터는 “프리즈에 나온 고가 작품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좋은 작품을 빨리 잡기 위해 서둘러 KIAF 부스를 찾았다”고 말했다.
실구매자들이 KIAF에 몰리자 프리즈에 둥지를 튼 일부 해외 갤러리 관계자들이 KIAF 측에 “내년에는 KIAF에 부스를 낼 수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 KIAF 관계자는 “내년에 KIAF 부스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해외 갤러리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고 말했다.
600억원 피카소 작품도 주인 찾을까
유명 갤러리들의 명작들은 프리즈 서울에서 일찌감치 주인을 찾았다. 개막 첫날 VIP 공개에서 하우저&워스 갤러리는 38억원대의 조지 콘도 작품과 24억원대의 마크 브랜드퍼드 작품 한 점씩을 팔았다. 게오르크 바젤리츠의 16억원대 작품(타데우스 로팍), 애니시 커푸어의 10억원대 작품(리손 갤러리)도 주인을 찾았다.KIAF 부스에서도 고가 작품들이 매진됐다. 요나스 부르게르트의 2억6000만원대 작품(탕컨템퍼러리아트), 제니 홀저의 약 3억원짜리 작품(국제갤러리)에도 ‘솔드 아웃’ 팻말이 붙었다. 개막 첫날부터 수십 명씩 줄 서서 감상한 데이미언 허스트의 ‘하이 윈도우즈’(2006)와 샤갈 등 거장의 작품도 강력한 구매 예약자들이 등장했다. 다만 600억원대에 달하는 피카소 작품 등 초고가 작품은 아직 주인이 나타나지 않았다.
내년 미술축제, 강북에서 열리나
아트페어의 인기를 눈으로 확인한 서울시는 내년 제22회 KIAF와 제2회 프리즈 서울을 강북으로 옮겨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KIAF와 프리즈 측은 5년간 공동 개최 협약을 맺은 상태다. 오 시장은 KIAF 측에 다음 행사를 ‘송현동 부지’에서 여는 방안을 추진하자고 제안했다. 110년간 굳게 닫혀 있던 종로구 북촌 일대 송현동 부지는 현재 시민에게 개방하는 문화광장이자 녹지공간으로 재조성 중이다. 면적만 서울광장(1만3207㎡)의 약 세 배, ‘연트럴파크’(3만4200㎡)와 맞먹는 3만7117㎡ 규모다. 송현동 부지에는 2027년 ‘이건희 기증관’도 들어선다.KIAF 관계자는 “오 시장이 송현동 부지에 천막을 치거나 가건물을 세워서라도 페어를 유치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고 말했다.
이선아/성수영/김보라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