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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연의 시적인 순간] 나만의 복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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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만난 활동가들과 모임이 끝나고 몇몇 동료들과 밥을 먹는 자리였다. 동료 A가 상사의 괴롭힘 때문에 조금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는 얘길 했다. 그러자 듣고 있던 B가 자기 일처럼 분개하며 상사가 말할 때 녹음하는 게 어떠냐고 의견을 냈다. A는 상사 앞에 녹음기를 들이밀고 평화로울 순 없을 거라고 탐탁지 않아 했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A에게 상사는 다음 세 가지를 요구했다고 한다. 1. 질문하지 말 것. 2. 야근하지 말 것. 3. 일을 빨리할 것. 아직 일이 익숙하지 않은 A가 질문도 못 하는데 어떻게 일을 빨리할 것이며 더군다나 야근도 금지라니 상사의 요구가 가혹하다 싶었다. B는 A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답답하고 복장이 터진 듯했다. “당하고만 있으면 네가 바본 줄 알아.” “널 함부로 대하는 사람에게 잘해줄 필요 없다니까. 너를 존중하는 사람에게 잘해줘.” “요즘 같은 시대에 권력질하면 안 된다는 거 모르나?” 다 맞는 말이다. B가 지나치게 걱정하는 것 같았는지 A는 자신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라며 나름의 복수를 했단다.

“복수를 어떻게 했는데?”

A는 상사가 일을 빨리하라고 하면 일을 더 빨리하는 방식으로 복수했다고 한다. 질문하지 말라고 하면 질문하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이전 문서를 뒤져가며 답을 찾았고, 야근을 못 하게 하면 자료를 싸 들고 와 집에서 일했다고 한다. 성가시고 힘들지만 다 해내는 방식으로 복수한 것이다. 그 말에 B는 더욱 더 복장 터진 표정으로 가슴을 쳐댔다. “에라이, 그게 복수냐?”

A는 복수하면서도 상대를 곤경에 빠뜨리지 않았고 자신도 발전하는 중이다. 나는 A의 복수법이 마음에 들었다. 자신을 괴롭히지 않는 복수. 자신을 허망하게 하지 않는 복수. 그것이 진정한 복수 같았다.

“원수를 갚음”이란 뜻의 복수도 있지만 “윗사람이 주는 것을 엎드려 받는다”라는 뜻의 복수(伏受)도 있다. 같은 소리글자에 뜻이 다른 말들을 살펴보는 버릇 덕분에 알게 된 ‘복수’는 공손히 받음을 이르는 말이다.


내가 살아오면서 가장 많이 한 것은 지각이었다. 지각 때문에 수업에도 늦었고, 회사에도 늦었고, 게으르다는 욕도 먹었다. 글 쓰는 것도 늘 지각이었다. 합평 날짜에 제대로 글을 보내지 못해 “너는 등단도 못 할 거야.” “게을러서 졸업은 하겠어?”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복수할 거라 다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 보니 나는 복수하느라 졸업도 하고 등단도 한 셈이다. 어쩌면 내가 잘돼서 배 아픈 사람은 애초에 없었던 건지도 모른다. 아마 그때 그 말들은 다 내가 잘되길 바라고 한 엄포였으리라.

시를 쓸 때마다 시적 대상이 주는 말을 공손히 받는 사람이 시인인가 싶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그 말을 공손히 받을 수 있을까? 두 손을 모아서 받아야 하나? 아닌 것 같다. 시는 공손하게 받으려고 하면 꼭 도망가곤 했다. 사물을 읽는 마음이 잽싸야 하고, 얄밉도록 시적 대상을 응시해야 겨우 시를 얻을 수 있었다. 이걸 공손이라고 쓰고 복수라고 읽어야 하나. 여하튼 나는 일을 하든, 글을 쓰든, 자주 느려터졌다고 통박을 받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복수를 꿈꾼다.

‘다음에는 더 일찍, 더 신나게 해내고 말겠어.’

이쯤 되니 복수란 내가 나를 이기는 방법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는 화가 나면 꼭, 너 같은 딸을 낳고 살아보라고 했다. 복수의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말이다. 딸에게 이해받고 싶다는 말이다. 하필이면 아들을 낳아서 딸 낳고 사는 심정은 모르지만, 엄마의 말을 공손히 받아 살아보니 알겠다. 이런 게 니체가 말하는 진정한 ‘적에 대한 사랑’인가? 부모는 내게 평생을 사랑해야 할 적이다.

어느새 가을이 코앞이다. 손택수 시인의 시 ‘다람쥐야 쳇바퀴를 돌려라’가 새삼 다르게 읽힌다. “다람쥐의 건망증은 참으로 위대하다/ 다람쥐가 땅속에 묻어놓고 잊어버린/ 도토리들이 자라서 상수리나무가 되었다면/ 상수리나무가 이룬 숲과/ 숲이 불러들인 새 울음소리/ 모두가 다 다람쥐의 건망증 덕분이 아닌가.” 갈참나무는 열매를 내어주는 방식으로 복수하고 있던 것이다. 적이 적을 잊어버릴 정도로 많은 열매를 내어주는 방식이라니 갈참나무를 따라가려면 나는 아직도 멀었다.

대학 때 졸업 못 할 거라는 소리를 듣던 친구들은 모두 졸업했고, 직장생활 못 할 거란 소리를 듣던 친구들은 모두 취직해 직장을 잘만 다니고 있다. 그리고 등단 못 할 거라는 소리를 듣던 친구들이 모두 작가가 됐다. 어떤 이는 시나 쓰라는 말 때문에 시를 쓰다 말고 소설가가 됐고, 어떤 이는 시는 아무나 쓰는 게 아니라는 말 때문에 시인이 됐다. 하나같이 멋진 복수다. 하지만 마음 아픈 말 하나 듣지 않고도 될 수 있었던 거 아닐까? 어쩌면 복수심 없이 더 깊은 그늘을 만들고 더 넓은 세상을 꿈꿨을 사람들이 마음에 콕 박힌 말 한마디 때문에 힘겹게 자기를 마주봐야 했던 것은 아닐까? 타인의 뾰족한 말 한마디에 무너지지 않고 자기 일을 해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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