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8월 31일 16:25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주지하다시피 근로자의 경우에는 근로기준법에 따라 해고보호를 부여받아 '정당한 이유' 없이는 해고당할 수 없고, 노동위원회나 법원으로부터 해고가 부당하다는 구제명령(판결)을 받으면 해고가 없었던 것처럼 고용관계가 계속된다. 이러한 규율에 대해서는 고용관계가 사실상 파탄된 이상 금전으로 적절히 보상하고 고용관계를 종료시킬 수 있는 이른바 금전보상제도가 몇몇 외국에서 운용되고 있다는 점을 일전에 한번 이야기한 적이 있다.회사 임원의 경우에는 어떤가. 위의 해고보호를 받는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에 해당되는지 여부는 대법원이 제시한 종합적 판단방법에 따라 결정되므로 일도양단적으로 말하기 어려운데, 판례의 경향에 비추어 보면 미등기 임원은 일응 근로자로 추정되고 등기 임원은 근로자가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면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등기 임원의 경우에는 근로기준법상의 해고보호는 적용되지 않고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에 의한 법정퇴직금의 보장도 적용되지 않는데, 이에 대해서는 상법이 따로 규율한다.
상법 제385조에 의하면 이사는 임기 중이라도 언제든지 주주총회의 결의로 해임할 수 있다. 다만 이사의 임기를 정한 경우에는 정당한 이유 없이 그 임기 만료 전에 해임한 때에는 회사에 대하여 해임으로 인한 손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근로자와는 달리 이사를 해임하는 데에 정당한 이유는 필요하지 않으므로 사유를 불문하고 주주총회에서 적법하게 해임할 수 있지만, 정당한 이유 없이 해임한 때에는 임기 만료시까지의 손해를 금전으로 보상하게끔 한 것이다. 회사와 임원과의 계약은 민법상 위임계약으로 보는데, 위임계약은 언제든 해지할 수 있기도 하다.
그 결과 이사의 해임을 둘러싼 법률분쟁은 잔여임기 동안의 보수상당액의 손해배상을 구하는 소송의 형태가 대부분인데, 이에 관해서는 독특한 판례법리가 형성돼있다.
어떤 법적 규율이든 그 의미와 적용범위를 획정하기 위해서는 법조항의 목적과 취지로부터 출발해야 하는데, 일반적으로 상법 제385조 제1항이 정당한 이유 없는 해임의 경우 손해배상을 인정하는 취지는 주주들의 해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과 이사의 임기에 대한 기대를 보호하는 것을 조화시키기 위해서라고 본다.
그렇다면 일단 기본적으로 해당 이사에게 임기에 대한 기대가 있어야 되기 때문에 임기를 정하지 않은 경우에는 손해배상을 할 필요가 없다(대법원 2001다23928 판결). 글로벌기업의 한국거점에 종종 이용되는 유한회사의 경우 주식회사와는 달리(주식회사 이사의 임기는 3년을 초과하지 못함) 이사의 임기에 제한이 없는데, 임기를 정하지 않았으면 마찬가지라고 봐야 할 것이다. 반대로 유한회사 이사의 임기가 너무 길면 그 잔여기간 동안의 손해배상액을 전액 인정해야 하는지의 문제가 있을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사례가 안 보이지만 일본의 경우에는 손해의 범위를 한정하는 사례들이 보인다(일본의 경우 공개회사가 아닌 주식회사는 정관으로 이사의 임기를 10년까지 늘릴 수 있다).
실무에서는 역시 손해배상청구의 요건인 '정당한 이유'의 존부를 주로 다투는데, 대법원은 여기서의 정당한 이유란 주주와 이사 사이에 불화 등 단순히 주관적인 신뢰관계가 상실된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이사가 법령이나 정관에 위배된 행위를 하였거나 정신적·육체적으로 경영자로서의 직무를 감당하기 현저하게 곤란한 경우, 회사의 중요한 사업계획 수립이나 그 추진에 실패함으로써 경영능력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관계가 상실된 경우 등과 같이 당해 이사가 경영자로서 업무를 집행하는데 장해가 될 객관적 상황이 발생한 경우에 비로소 임기 전에 해임할 수 있는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본다(2004다25611 판결). 가히 근로자를 함부로 해고할 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수준이라고 할 수 있는 엄격한 기준이라고 할 수 있으며, 따라서 예컨대 업무추진비나 출장비를 일부 부적절하게 집행했다는 정도로는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되지 않고(2011다42348 판결), 연간 경영계획 중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실천된 것이 없을 정도로 투자유치능력이나 경영능력 및 자질이 심히 부족한 경우여야 정당한 이유가 인정된다(위 2004다25611 판결).
그런데 이사의 회사 경영의 실제는 복잡해 위와 같은 일반적인 기준만 가지고 법적 분쟁의 결과를 예측하기는 용이하지 않은데, 조금 깊이 들어가 생각해보자.
이사에게는 충실의무가 있어서 이를 위반하면 회사에 대해서 손해배상을 지지만 경영진의 경영활동이 지나치게 위축되어서는 안되므로 경영판단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어서 경영판단의 실패에 대해서 쉽사리 손해배상책임을 묻지는 못하게 되어있다. 그런데 이사의 경영판단의 실패에 대해서 회사가 손해배상을 추궁하지는 못할지언정, 조기에 해당 이사를 잔여임기에 대한 보상없이 교체할 수는 없는가? 찬반양론이 있을 수 있으나, 이를 긍정하는 일본의 하급심 사례가 있다(히로시마지판 1994. 11. 29.).
회사가 경영자의 높은 전문성에 기대를 걸고 이사로 영입하면서 구체적인 매출·영업이익 등의 목표수치를 설정하고 미달성시 해임된다는 약정을 했다면 어떨까. 이른바 '선임목적의 미달성'을 이사 해임의 정당한 이유의 하나로서 유형화시킬 수 있을지의 문제인데, 일본에서는 이를 인정하는 하급심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다. 위에서 본 대법원의 현행 판단기준에 의하더라도 이처럼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하였다면 당해 이사의 임기만료에 대한 기대수준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으니 정당한 이유의 존부 판단에 적극 고려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러한 정당한 이유는 해당 이사를 주주총회에서 해임할 당시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면 되고 반드시 주주들이 주주총회 당시에 그 전모를 파악해서 인식하고 논의하였을 것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서울고등법원 2018나2074410 판결). 근로자에 대한 해고가 적법하기 위해서는 해고사유를 분명하게 특정해서 당해 근로자에게 그에 대한 소명의 기회를 부여해야만 한다는 법리와 크게 차이가 나는 부분이다.
정당한 이유가 부정되는 경우 손해배상의 범위를 둘러싸고도 실무에서 문제된다. 고정적인 보수 이외에 매년 지급여부나 지급액이 달라질 수 있는 성과보수나 퇴직위로금, 보수인상분 등이 배상액으로 인정될 수 있는지의 문제인데, 소송 과정에서 임기 만료시까지 재임하였다고 가정하였을 때에 지급받았을 개연성이 높은지에 대해서 치열하게 다투어진다. 그런데, 상법 규정의 취지가 임기 만료에 대한 이사의 기대를 보호하고자 하는 데 있다는 점과 당해 이사의 기대의 내용이나 정도가 유의미하다는 점을 되돌아보면, 처음부터 위임계약 또는 임원보수규정 등에 지급이 제한되는 사유를 구체적으로 정하는 것도 분쟁가능성을 줄이는 방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사의 임기 도중에 정관을 개정하거나 주주총회를 열어 임기를 단축시키고 아울러 해당 이사를 재선임하지 않고 퇴임시키는 경우가 있는데, 법원은 이때에도 실질적으로 해당 이사를 임기 중에 해임한 것으로 보아서 정당한 이유의 유무에 따라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8가합519125 판결).
이상의 논의의 전제인 상법 제385조 제1항은 대표이사에게는 적용되지 않으므로 대표이사가 이사회에서 해임되어 무보수, 비상근 이사가 되었다고 해도 보수상당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는 없다(대법원 2004다25123 판결). 이때 민법상 위임의 규정에 의거해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지금까지 본 바와 같이 이사의 해임을 둘러싸고 꽤 복잡한 여러 법적 규율이 형성되어 있다. 분쟁의 예방과 발생시의 효율적 해결을 위해 회사마다 점검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정리=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