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중국과 기술전쟁을 시작하면서 미국의 반도체와 배터리산업에 기념비적인 두가지 법을 통과시켰습니다. '반도체와 과학법(the CHIPS and Science Act, 이하 반도체법)'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Inflation Reduction Act 2022)' 등 배터리산업 육성 정책입니다.
미국 반도체법에는 미국내 반도체시설 건립지원, 390억달러와 첨단 반도체 R&D 지원 110억달러 등 반도체 산업에만 총 527억달러(69조원)를 지원하고 미국내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에 25% 세액공제로 10년간 240억달러(31조원) 상당의 지원을 합니다. 관련 보조금을 받은 기업은 향후 10년간 중국 등에서 28nm이상의 첨단반도체 제조시설 확충을 포함한 투자를 할 수 없도록 하는 가드레일 조항을 두었습니다.
이번 미국의 반도체법과 이와 연계한 반도체 칩(Chip)4동맹에 대해 한국은 중국의 보복을 걱정합니다. 그러나 이 미국의 반도체법은 대중국 견제는 명분이고 본질은 '반도체 미국 회귀법(Semiconductor Reshoring Act)'으로 한국으로서는 과거 일본 반도체업계가 미국에 당했던 제2의 미일반도체협정이 될 가능성을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 법안에 서명을 하면서 법안의 성격을 명확히 규정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반도체법 서명식에서 "반도체는 미국이 발명했으나 지난 수년간 해외에서 생산하도록 그냥 뒀다"며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반도체 공급이 끊기면서 경제는 멈춰 섰고, 가계는 높은 물가에 시달려야 했다"고 말했습니다. 또 "이 법은 반도체를 바로 이곳, 미국에서 생산하도록 하려는 우리의 노력을 배가시킬 것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중국이 '중국제조 2025'에 보조금을 지급한다고 맹비난했던 미국이 이젠 앞장서서 반도체에 527억달러 보조금을 퍼붓고 있습니다. 국제질서는 강자의 룰이지 약자를 보호하는 천사의 손길이 아닙니다. 강자에 불리하면 언제든 뒤집고 유리하면 언제든 새로 만드는 것입니다.
미국의 보조금은 인텔을 위한 보조금이고 미국의 반도체 내재화 전략입니다. 한국과 대만기업에도 보조금 준다는 것은 당장 급하기 때문에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는 것일 뿐입니다. 인텔의 인텔 인사이드(Intel Inside) 전략처럼 미국의 반도체법은 중국의 견제는 명분이고 반도체 인사이드(Semi Inside)전략입니다.
중국 반도체기업을 제재하는 것은 상무부가 '수출관리규정(EAR)'에 따라 만든 미국의 Entity List로 만도 가능합니다. 기관 목록에 포함되면 해당 기관에 대한 수출은 미국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Chip4동맹을 만들고 대규모의 보조금까지 준다는 것은 다른 의도가 있다고 봐야 합니다. 미국의 창 끝은 아직 14nm도 헤매는 중국이 아니라 3nm에 진입한 대만과 한국입니다. 7nm에서 교착상태인 미국의 기술을 3nm이하에서는 대만과 한국을 따라잡을 묘수를 쓰자는 것이고 그 배후에는 인텔이 있습니다.
메모리는 한국에, 로직제품은 대만에 생산을 의존하는 미국, 중국의 부상이후 이를 좌시할 수 없습니다. 대만은 중국에, 한국은 북한에 지정학적 리스크가 크기 때문입니다. 만일 유사시에 이들 지역에 문제가 생기면 대만과 한국은 물론이지만 미국의 첨단산업도 원시시대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4차산업혁명은 스마트폰이 아니라 자율주행전기차가 주도 품목입니다. 핸드폰이 반도체 통조림이라면 전기차는 반도체 드럼통 수준입니다. 내연기관차에는 반도체가 200여개 필요하지만, 전기차에는 400~500개, 자율주행차에는 1000~2000개 정도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미국 4차산업혁명을 주도하려면 반도체는 반드시 내재화해야 합니다.
두려워할 것은 바이든 대통령 아닌 고졸신화 CEO
실력은 시력(視力)입니다. 보는 눈, 통찰력이 승부의 관건입니다. 이길 수 있는 싸움만 해야 합니다. 반도체 산업을 잘 모르는 언론과 정치권의 어설픈 훈수 말고 반도체 하나에 목숨 걸어 세계반도체 1, 3위의 반열에 오른 한국 반도체기업의 판단을 믿어야 합니다.세계 1위 기업을 가진 정부도 눈을 크게 뜨고 귀를 활짝 열어야 합니다. 대책이나 실행 방안도 없이 먼저 입을 크게 열면 다칩니다. 고수는 길바닥의 개미에게도 지혜를 배운다고 합니다. 자세를 낮추고 귀를 기울여 반도체업계의 얘기를 진지하게 들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중국의 보복이나 미국의 협박이 아닙니다. 정치가 아니라 기술을 봐야 합니다. 미국에서 IT의 역사를 바꾼 인물 빌게이츠, 스티브잡스는 최종학력이 고졸입니다. 미국은 하버드대 출신이 아니라 고졸 신화가 더 무섭습니다.
지금 한국은 세계2위 반도체업체인 인텔의 고졸 출신CEO 팻겔싱어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텔은 1985년 DRAM을 포기하고 일본에 넘기고 대신 CPU에 목숨 걸어 CPU제국을 건설했습니다. 고졸 출신 사장의 신화,? 팻 겔싱어 인텔CEO는 2021년에 포기했던 파운드리 재건을 선언했습니다. 지금 한국 반도체의 적은 중국의 허접스런 3, 4류 반도체기업이 아니라 세계최강의 반도체 기술을 가진 인텔입니다.
미국의 정치는 4년 마다 바뀔 수 있지만 인텔은 그대로입니다. 정치가 바뀔수록 더 반도체에 절박해진 미국 정권의 인텔에 대한 지원은 경쟁적으로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인텔의 귀환을 무섭게 봐야 하고 한국 정부의 강력한 반도체 지원이 없으면 결국 인텔에 당할 것입니다.
미국은 미국 기술이 10%이상 들어간 반도체 관련 장비,소재,소프트의 대중수출은 모두 통제가능합니다. 그런데도 미국에 공장을 지으면 527억달러의 돈과 25%투자세액공제도 해준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가진 미국이 후진국에 돈까지 줘가며 공장유치 한다는 건 이상하지 않습니까? '자신의 살을 베어 내주고 상대의 뼈를 끊어낸다'는 육참골단(肉斬骨斷)의 전략이 지금 미국의 반도체 전략입니다.
새는 모이에 목숨 걸다 죽고, 사람은 공짜 돈 탐내다 죽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527억 달러가 큰 돈 같지만 세계 상위10대 반도체 제조회사가 나누어 갖는다면 이는 이들 회사 연간순이익의 5~7%수준에 불과합니다.
?바이든의 "빌드 백 베터(Build Back Better)"든 트럼프의 "아메리카 그레이트 어게인(America Great Again)"이든 간에 모두 아메리크 퍼스트(America First)입니다. 약해진 미국의 기술패권 회복전략을 냉정하게 봐야하고 그 중심에 한국의 반도체가 서 있습니다. 미국이 다 알아서 해주겠지는 환상입니다.
?반도체의 다른 말은 중국은 '심장', 미국은 '안보' 입니다. 안보는 구걸로 얻을 수 없습니다. 믿을 것은 자신 뿐이고 실수하면 그 휴유증도 처절하게 자신이 감내해야 합니다. 한국의 사드사태, 대만의 중국 실사격 훈련에서 봤지만 한국이나 대만이 중국에 당하고 있을 때 미국이 해준 것은 없었습니다.
한국은 미국의 보조금에 혹하지 말아야 합니다. 미,중의 반도체전쟁과 미국의 “반도체 내재화(Semicon Inside)전략”에 한국이 할 일은 공장이 미국에 있든, 중국에 있든 간에 월드 클라스급의 절대적인 기술수준에서 금메달 만 유지하면 됩니다. 일본이 타산지석입니다 일본도 돈에 취해 1986년부터 미일반도체협정 3번 연장하면서 반도체를 싹 말아먹었습니다. 한국, 일본의 길을 가면 안됩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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