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사들은 이달 말 업권별 협회·중앙회 홈페이지를 통해 올 상반기 금리인하요구권 운영 실적을 공시한다. 이후 금융사들은 반년마다 금리인하요구 신청건수와 수용건수, 수용률과 이자 감면액 등 네 가지 항목을 공개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공시할 의무가 없었다.
○“수용률 부풀리기 꼼수 부추길 것”
금리인하요구권은 대출받은 소비자가 소득 증가, 재무 상태 개선 등으로 신용 상태가 뚜렷하게 개선됐을 때 금융사에 금리 인하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다. 금융위원회는 이 권리를 활성화하기 위해 올 상반기부터 모든 금융사가 금리 인하 요구를 받아들인 실적을 주기적으로 공개하도록 했다.금융위는 “운영 실적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보니 금융사가 금리인하요구권 수용률을 높일 유인이 부족했다”며 “비교 공시로 소비자 선택권을 보장하겠다”고 했다.
금융사들은 이런 취지에는 동의하면서도 금리인하요구권 수용률 공개로 회사 간 ‘줄 세우기’가 벌어질 것을 걱정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금리를 얼마나 깎아줬는지보다 신청건수 대비 수용건수가 얼마냐만 부각될 수 있어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평판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선 겉으로 보이는 수용률을 높이는 게 최선”이라며 “차입자 한 명당 금리 인하폭을 줄이고 건수를 늘리는 ‘꼼수’가 생길 수도 있다”고 했다.
애초에 대출금리를 낮게 매기고 신용평가를 철저히 한 금융사일수록 추가 금리 인하 여력이 상대적으로 작을 수 있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지금도 수용률이 낮은 금융사를 보면 이미 평균 대출금리가 낮거나 연 14% 이상 고금리 대출 비율이 낮은 경우가 많다”며 “금리인하요구권 수용률이 부각되면 이런 곳이 오히려 ‘악덕’으로 인식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토로했다.
국회도 부작용을 지적하고 나섰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최근 펴낸 ‘국정감사 이슈 분석’ 보고서에서 “수용률은 금융사의 책임만으로 결정될 수 있는 게 아니다”며 “수용률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금융사가 오히려 신청 안내 등을 소극적으로 할 수 있다는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감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내·설명 강화 등 정공법으로
수용률은 분자인 수용건수 증가폭보다 분모인 신청건수 증가폭이 크면 떨어진다. 실제 갈수록 금리인하요구권에 대한 홍보와 인식이 개선되고 신청 절차가 편리해지면서 수용률이 떨어지고 있다. 금융위에 따르면 2017년 61.8%였던 금리인하요구권 수용률은 2020년 37.1%로 하락했다. 지난해 상반기 은행권 수용률은 이보다 더 낮은 26%대였다. 한 은행 관계자는 “비대면 신청을 간소화하고 신청 횟수·시점에 제한을 두지 않다 보니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소비자도 수시로 중복 신청하면서 신청건수가 폭증했다”고 말했다.전문가들은 금리인하요구권을 실질적으로 활성화하려면 수용률 같은 단편적인 수치 공시보다는 소비자에게 정기·수시로 안내를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금융사가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지 않도록 금리 인하가 불가능할 땐 그 이유를 설명하는 식으로 보완이 필요하다고 했다. 수치로 금융사들을 줄 세우는 공시제는 오히려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은행들은 지난 22일부터 시행된 예대금리차 공시를 앞두고 예금금리를 대폭 끌어올렸지만, 시장에선 조달비용 증가, 대출금리 상승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나타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빈난새 기자 binthe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