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앞 잔디광장. ‘도로교통법 개정안 배달 중’이라는 문구가 부착된 사람 무릎높이 크기의 카트가 조심스럽게 인도를 내달렸다. 바로 실외 자율주행 로봇개발 스타트업인 뉴빌리티가 만든 배송로봇 ‘뉴비’였다.
의원회관에서 출발해 잔디광장 분수대를 지나 국회 경내를 가로지른 뉴비는 잠시 뒤 의사당(본청)에 도착했다. 본청 의안접수센터에 멈춰선 뉴비에는 정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서 준비한 도로교통법 개정안 서류가 실려있었다. 로봇의 적재함이 열리자 정 의원은 법안 서류를 꺼내 곧바로 의안과 직원에 제출했다.
이날 시연 행사는 정 의원이 자율주행 배송로봇의 활성화를 위한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것과 동시에 열렸다. 앞으로 자율주행 배송로봇이 활성화 될 경우 우리 삶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것이다.
배송로봇 뉴비는 이미 지난달 18일부터 매일 세 차례 국회도서관과 의원회관 사이를 오가며 도서 배송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의원회관에서 근무하는 국회의원이나 보좌진이 도서관에 대출을 신청하면, 책을 실은 배송로봇이 국회 경내를 가로질러 가져다준다. 국회 내 도서 배송 사업은 정부의 규제 샌드박스 실증 특례 일환으로 카카오모빌리티와 뉴빌리티가 맡고 있다.
그런데 이 배송로봇은 아직까지는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로봇이 움직일 때마다 먼발치에서 관리 요원이 따라 다닌다. 사실 뉴비는 완전 자율주행 기술이 적용된 로봇으로 사람의 조종 없이도 운행이 가능하다. 하지만 현행법상 로봇의 자율주행이 인도에서 허용되지 않아 불가피하게 요원이 동행한 것이다.
도로교통법상 자율주행 로봇은 ‘자동차’로 분류된다. 이에 따라 원칙적으로 인도(보행로) 통행이 금지된다. 업계에서는 배송로봇의 상용화가 가능하려면 인도 통행 금지 규제를 풀어줘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작고 저속으로 주행하는 배송로봇이 사람들에 필요한 물품을 직접 전달해주기 위해선 인도 통행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 의원이 발의한 도로교통법 개정안은 인도 통행이 가능한 배송로봇의 기준을 특정하고, 인도 통행 및 도로 횡단 방법을 규정하는 등 내용을 담고 있다. 우선 배송로봇의 법적 용어는 ‘생활물류서비스로봇’으로 했다.
생활물류서비스로봇이란 지능형 로봇 개발 및 보급 촉진법상 지능형 로봇 중 시속 15㎞ 이하로만 운행하고 차체 중량이 60㎏ 미만인 것을 뜻한다.
생활물류서비스로봇은 보도와 차도가 구분된 도로에서는 반드시 보도로 통행하도록 했다. 보행자 통행에 방해가 될 경우엔 서행하거나 일시정지하고, 우측통행 원칙 등도 담겼다.
정 의원은 “로봇 관련 규제개혁 지연으로 미국과 일본, EU 등 타 선진국에 비해 법령 개정이 늦어지고 있다”며 “신산업 성장동력인 로봇산업 발전을 위해서는 하루라도 빨리 자율주행 배송 로봇의 인도 주행과 도로 횡단을 허용하는 개정안이 통과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로봇산업 진흥을 위해 이번 개정안 하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각 부처별 소관법들을 차례대로 개정해 나갈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정 의원은 국토해양부 교통정책실장과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 등을 역임한 교통·물류 전문가다.
지난 7월부터는 국회 산업통상자원중기벤처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정 의원은 “로봇산업 발전을 담당하는 소관 상임위 위원으로서 산업통상자원부 및 관련 업계 등과 협의해 앞으로도 산업 성장을 저해하는 규제개혁을 위한 활동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