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딱, 좋아요.”
정은혜 작가(사진)는 24일 첫 그림 에세이 책 <은혜씨의 포옹> 출간 기념 기자회견에서 “눈에 확 들어오는 주황색 표지가 마음에 든다”며 이같이 말했다. 발달장애(다운증후군)를 가진 정 작가는 화가이자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로 이름을 알린 배우다.
정 작가는 이날부터 오는 30일까지 인사동 토포하우스에서 개인전 ‘포옹전’을 연다. “사람을 안는 게 좋아요. 그러면 제가 따뜻해지거든요. 따뜻하면 기분이 좋아요. 포옹은 사랑이에요.”
정 작가의 어머니이자 만화가인 장차현실 작가는 “은혜씨의 사진 중에는 포옹한 사진이 많다”며 “포옹은 그리운 몸짓이자 사람 사이의 경계도 허물어준다”고 했다. 장차 작가는 딸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은혜씨’라고 부른다.
이렇게 밝은 정 작가도 한때 다른 사람과 눈을 마주하는 것조차 어려워했다. 편견 어린 시선 탓에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 머물자 조현병, 틱 증세가 생겼다. 정 작가는 책에서 이때의 절망을 ‘동굴’이라고 표현했다. “갈 데가 없었어요. 집 한구석에서 혼자 뜨개질하고, 이불을 덮고 있었죠. 매일매일 동굴 속에서 있었어요.” 우연히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다시 세상과 마주했다. 2013년부터 어머니의 화실에서 뒷정리를 거들다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정 작가는 “그림을 그리면서 시선 강박이 없어졌다”고 했다. 경기 양평 문호리 벼룩시장에서 처음 본 사람들의 캐리커처를 그린 걸 계기로 그림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가 그린 캐리커처는 4000점이 넘는다.
발달장애인 중에 정 작가처럼 직업을 갖고 활발하게 활동하는 경우는 드물다. 재능이 있어도 세상 밖으로 꺼낼 기회는 많지 않다. 장차 작가는 “그림에 재능이 있는 발달장애인이 많지만 경제적 뒷받침이 부족해 대개 집에 쌓아둔다”며 “발달장애인의 예술활동이 일로 연계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 작가의 글에는 어머니에 대한 애정과 고마움이 묻어난다. “엄마는 저를 키우느라 지쳤죠. 발달장애인 투쟁을 위해 삭발도 했어요. 엄마는 멋있는 나의 스타.”
이날 간담회에서 “고생 많았어”라는 정 작가의 말에 장차 작가는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그러나 장차 작가는 “이제 은혜씨에게 제일 중요한 사람이 제가 아니었으면 한다”며 “저 외에 친구, 동료 등 소중한 사람들과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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