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전시장에 들어설 때마다 깊은숨을 들이마시게 된다. 부담스럽고 버거운 마음에서다. 베를린 비엔날레는 세상의 무게를, 시대의 고민을, 예술의 역할을 냉혹하게 반추하게 했다. 어떤 문제에서도 피하지 않고 직면했다.
비엔날레의 주제는 ‘Still Present(아직도 있다)!’. 프랑스계 알제리 예술가인 카데르 아티아가 총괄 기획을 맡았다. 독일 베를린 도심 6개의 장소에 흩어져 있는 전시장에는 식민주의와 가부장 사회, 자본주의가 가져온 파괴력 등을 사유하는 작품으로 가득했다. 조각에서 회화, 설치와 다큐멘터리 영상까지 그 방식이 다양했다.
이번 비엔날레는 급격한 현대화가 가져온 집단적, 개인적 트라우마를 한데 모아놓은 거대한 백과사전을 연상하게 했다. 아티아는 이 전시를 위해 베트남에서 세네갈까지 다국적 여성 큐레이터 5명과 전 세계 70명의 예술가를 끌어모았다.
동독 국가안보부 자리가 전시회 자리로
현대미술 작품들은 역사적 장소에 놓였다. 베를린 중앙역 건너편 낡은 역사를 개조한 함부르크역 미술관, 325주년을 맞이한 베를린 예술아카데미 두 곳, 1998년 베를린 비엔날레를 처음 시작한 쿤스트베르케(KW), 옛 동독 국가안보부 자리에 있는 슈타지젠트랄레, 베를린 탈식민지 역사박물관 데콜로니알 등이 모두 미술관이 됐다.
콩고민주공화국의 새미 발로지는 ‘그리고 북해의 파도에 가라앉은 이야기를 속삭이는 이야기(2021)’를 선보였다. 기하학적 증기 온실 상자를 만들고 그 안에 식물을 담아낸 설치 예술이다. 20세기 초 녹음된 아프리카 수감자들의 목소리를 온실 속에 담아 세계를 수집하고자 했던 제국주의를 비판했다.
카이로에서 태어나 터키에서 성장한 독학 예술가 닐 얄터는 프랑스로 이주해 여전히 정치적 망명 생활을 하는 작가다. ‘Exile is Hard Job(추방은 어려운 직업, 2022)’ 작품에서 그는 터키의 가족, 포르투갈 여성과의 대화를 영상으로 구현해 망명 생활의 어려움과 그 의미에 대해 말했다. 베트남 출신인 미국 이민자 타미 응우옌은 식민지의 유산인 천주교가 베트남 사람들에게 어떻게 구원의 도구가 됐는지를 역설한다. 원시적인 열대 우림의 풍경 속에 성경의 이미지를 그린 14개 작품은 친숙하지만 낯선 의식의 전환을 유도했다.
역사 속 페미니즘·기후 위기를 말하다
데네스 피우막시 베다 아라치게는 옛 실론(스리랑카) 섬 원주민 그룹의 두개골 유물을 들고 있는 여성의 몸 조각 작품으로 눈길을 끌었다. 그는 “나의 몸이 조각품의 기초”라며 “페미니스트 관점에서 (억압받았던) 우리 조상의 유해가 과연 누구에게 속하는가를 질문하고 싶었다”고 했다.
나이지리아 작가 에티노사 이본은 전쟁의 공포와 광기를 나이지리아 여성의 얼굴 사진으로 포착했다. 고향 북동부 시골에서 무력 충돌로 피해를 보고 실향한 여성들의 얼굴을 흑백 사진에 담고 그들의 생각을 암시하는 다른 이미지를 합성했다. 강제 결혼, 신체적 학대, 납치와 강간 사건이 빈번했던 전쟁의 폐해들을 아름다운 들판, 아이의 장난감, 활짝 핀 꽃의 보편적인 이미지와 결합해 담담하게 표현했다. 이본은 “역사적으로 전쟁은 남자의 게임이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키예프와 베를린에서 작업하는 공간기술센터(CST)는 포렌식 기술을 활용한 건축 작업물로 기후 위기를 역설했다. 이들의 ‘클라우드 연구(2021)’는 시위 진압용 최루탄, 열대지방의 산림 방화로 인한 석유화학물질이 유독성 공기를 퍼뜨리는 과정을 영상으로 기록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유독성 구름이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를 변화시켜 기후 식민지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보여줬다.
“보기 불편해” 논쟁적 작품도
논쟁적 작품도 더러 있었다. 인도 태생으로 미국에서 작업하는 마유리 차리는 인도 가부장제 사회가 여성의 몸을 통제, 비판, 폭력의 대상으로 삼는 것을 비판하는 작가. 작품에 과도한 노출 문제가 있어 최근 몇몇 전시에서 제외된 이 작가는 ‘나는 쾌락을 위해 창조된 것이 아니다(2022)’ 시리즈로 비엔날레를 찾았다. 월경하는 여성을 불결한 것으로 여겨 집에서 추방하는 인도 전통을 조롱하며 소똥으로 여성의 성기를 형상화해 벽에 붙였다. 또 여성 몸의 형태를 천 위에 바느질한 작품을 배치해 천장에 걸었다.프랑스 예술가 장 자크 르벨의 ‘포이즌 솔루블(Poison Soluble·2013)’은 작품 자체의 불편함과 함께 주최 측의 운영 방식까지 도마에 오르게 했다. 미국 군인들이 2003년 이라크 침공 후 이라크 포로들을 학대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 알몸 시체 더미 위에서 웃고 있는 모습이나 고문당하는 장면을 확대 인쇄해 미로 같은 벽면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식민주의의 결과에 대해 묵상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이라크 작가의 작품 옆에 르벨의 작품이 평행 전시된 점에 대해 다른 작가들의 전시 보이콧이 이어지면서 베를린 비엔날레 주최 측은 결국 공식 사과문을 올려야 했다.
베를린=김보라/이선아 기자
사진=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