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폴더블(접는폰) 스마트폰 갤럭시Z폴드4와 갤럭시Z플립4가 사전판매에 돌입한 가운데 이 시리즈의 흥행 여부가 하반기 삼성전자의 실적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갈수록 모바일 판매량이 저조할 것으로 보이는 데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복권 이후 첫 작품이라서다. 4세대 폴더블폰 출시를 이끈 노태문 삼성전자 MX 사업부장(사장)은 가격 인상 압박을 견디고 판매가 동결을 선언, '박리다매'로 승부를 보겠다고 밝혔다.
모바일 산업 역성장 전망…폴더블로 반전 꾀한다
17일 모바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갤폴드4와 갤플립4를 오는 22일까지 사전 판매한다. 국내 공식 출시는 26일이지만 사전 구매한 소비자들은 23일부터 제품을 수령하고 개통할 수 있다.사전 구매 소비자들은 적극적 소비 패턴을 보이는 특수 계층으로서, 이들의 반응과 사전 판매 최종 수치가 전반적인 흥행 여부를 가르기 때문에 삼성전자도 초반 분위기에 주목하고 있다. 다만 한 판매점 관계자는 "아직은 신작의 사전 예약 분위기가 전작을 넘어서는 것 같지는 않다. 며칠 추이를 좀 더 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갤폴드4, 갤플립4는 삼성전자의 하반기 실적을 방어할 제품으로 기대를 받고 있다. 이번 프로젝트를 이끈 노 사장은 2025년까지 삼성전자 프리미엄 스마트폰 판매량의 절반 이상을 폴더블폰으로 채우겠다는 목표를 제시하며 폴더블폰 대중화를 선언했다.
올해 모바일 산업이 5~8% 역성장할 것이라는 시장조사기관들 예측에도 프리미엄 스마트폰 수요가 유지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 노 사장은 "역성장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발표한 신제품으로 프리미엄 시장의 수요를 끌어내고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폴더블 1000만대 이상의 (판매) 숫자를 찍는 원년을 만들어내는 것이 목표"라고 부연했다. 또 "올해 하반기 경제가 매우 불확실한 상황"이라면서도 "이번에 소개한 폴더블 스마트폰들을 대중해 경제 위기를 이겨내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갤럭시Z폴드3와 플립3 등 폴더블폰 판매량은 약 800만대 수준이었다.
글로벌 경제는 매우 불확실한 상황이다. 지난 5월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9.6%를 기록했다. 1988년 8월 이후 34년 만에 최고치다. 물가 상승은 인건비 증가와 연결되고 특히 물류비 상승으로 이어진다. 여기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와 이에 따른 물류·공급망 타격, 글로벌 경제 불안 상태 지속 등으로 스마트폰 수요 부진도 우려된다.
이처럼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고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으면서 생필품이 아닌 신형 스마트폰 구입을 뒤로 미룰 가능성이 커졌다. 시장조사기관 IDC에 따르면 올해 세계 스마트폰 출하량은 지난해보다 3.5% 감소한 13억1000만대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노태문의 결단…가격 인상 압박 견디고 판매가 동결
시장 구매력이 약해지자 노 사장이 들고 나온 카드는 '가격 동결'이다. 신제품 가격은 달러 기준 갤플립4가 999달러(128기가), 갤폴드4가 1799달러(128기가)로, 전작과 동일한 가격으로 책정했다. 국내에서 갤플립4는 140만8000원(256기가), 갤폴드4는 200만원 이내로 책정됐다. 이와 관련해 노 사장은 "판매량을 늘려 수익성을 확보하면서 고객에게 감당할 수 있는 가격을 제공해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계획"이라고 설명했다.모바일 업계 한 관계자는 "원자재값, 인건비 등을 고려하면 신작 가격을 10% 가량 올려야 경영적으로 수지가 맞는 상황"이라며 "노 사장은 박리다매로 많이 팔겠다는 구상인데, 사실상 수익보다는 시장을 완전히 장악해 폴더블폰 생태계를 삼성이 쥐고 가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시리즈의 가격 동결은 그룹 내부에서도 의견이 엇갈린 것으로 전해졌다. 물가, 부품 수급 등을 고려해 일부라도 가격을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았던 것. 하지만 노 사장은 수요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폴더블이라는 차별화된 제품의 대중화가 중장기적으로 더 큰 효과가 있다고 판단했다. 애플 아이폰이 소프트웨어에 강점을 가졌다면 폴더블폰은 디스플레이 등 삼성전자가 잘 할 수 있는 하드웨어의 영역이란 얘기다.
노 사장의 가격 동결 승부수는 삼성전자에 큰 도전이다. 현재 MX사업부는 스마트폰 판매량을 늘리고 있지만 영업이익이 낮은 편이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올 2분기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출하량을 8% 늘리며 점유율 1위를 지켰다. 전체 시장 출하량이 전년 동기대비 9% 감소한 점을 고려하면 고무적인 일이다. 특히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제조 상위 5개 업체 중 유일하게 성장세를 보였다.
이 기간 MX사업부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1% 증가한 28조원을 기록했다. 다만 영업익은 18.9% 감소한 2조6200억원으로 집계됐다. 물류비와 원자재 가격 상승 영향도 있지만 프리미엄 보다 중저가 폰 판매량이 더 많았던 탓이다.
실제 시장조사업체 옴디아 조사 결과 삼성전자의 갤럭시A12는 지난해 글로벌 시장에서 가장 많이 판매한 스마트폰에 올랐다. 그러나 이 기기의 평균판매단가(ASP)는 160달러에 불과했다. 삼성전자 전체로 봐도 ASP는 263달러에 그쳤다. 반면 애플은 아이폰12~13 시리즈를 중심으로 판매량 2위부터 9위까지 차지했고 ASP도 600~1300달러를 기록해 적게 팔고도 이윤은 훨씬 많이 가져갔다.
노태문이 넘어야 할 산
노 사장은 입사 이래 지금까지 무선사업부 위주로 경력을 쌓아왔다. 때문에 2010년 첫 갤럭시 브랜드를 사용한 스마트폰인 갤럭시S부터 갤럭시S10까지, 2011년 등장한 갤럭시노트1부터 갤럭시노트10까지의 개발 과정에 모두 참여해 삼성전자 스마트폰과 관련된 속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프리미엄 스마트폰 개발에 힘써온 그는 세계 최초 상용화된 폴더블 스마트폰인 '갤럭시 폴드'를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시키면서 '이재용의 남자'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폼팩터(제품유형)인 폴더블폰 시대를 연 일등공신이라 신뢰도가 절대적이다.
다만 노 사장은 올해 여러 위기와 맞닥뜨린 상태다. 갤럭시S22의 '게임 옵티마이징 서비스(GOS)' 논란과 지나친 원가 절감 전략에 따른 중국산 부품 채택 비율 증가는 소비자들의 불안을 사는 요소로 꼽힌다.
다음 달 출시하는 애플 아이폰 신작과의 경쟁도 문제다. KB증권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삼성전자가 중저가 스마트폰 시장에서 판매 부진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폴더블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뚜렷한 반등을 이뤄내기 어렵다며 앞으로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의 강세가 더욱 돋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애플의 올해 아이폰14 초도물량 출하량은 9300만대로, 전작 대비 15%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KB증권은 "올해 애플은 신제품 디스플레이, 카메라 개선 등에 힘입어 작년에 이어 역대 최대 판매량 경신이 기대된다"고 내다봤다.
애플 역시 견조한 수요를 확인하며 차기작에 대한 성장 전략을 예고했다. 애플은 하반기 아이폰14를 앞세워 매출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2분기 실적 공개 후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소비자들이 경기를 걱정하면서 상품 지출에 돈을 덜 쓰고 있다"면서도 "아이폰이나 애플 기기에는 그렇지 않았다"고 자신했다.
삼성전자뿐 아니라 중국 샤오미, 오포, 비보 등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업체들이 올해 스마트폰 판매량 전망치를 전년대비 3~10% 하향 조정에 나선 것과는 대조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폴더블폰은 무엇보다도 '이 부회장 복권 후 첫 갤럭시'라는데 의미가 있다"며 "총수가 경영에 복귀하기 위해 준비 중인데 그룹의 대표 상품이 흥행에 실패한다면 어떻겠는가, 노 사장이 여러모로 큰 부담을 느끼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