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가 조만간 010 번호가 동나는거 아냐? ‘020’ 번호도 나오나?”
다음달 1일부터 시작하는 ‘e심(eSIM·내장형 가입자식별모듈)’ 서비스를 앞두고 일각에서 010 전화번호 고갈 우려가 나오는 분위기입니다. 스마트폰 하나로 번호 두 개를 쓸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010 번호 고갈 위기가 눈 앞에 온 걸까요.
e심·스마트워치·태블릿…010 번호 쓸 곳 많아진다
e심은 통신 서비스의 ‘신분증’ 역할을 하는 유심(USIM·범용가입자식별모듈)을 별도 심 카드 대신 단말기에 칩 형태로 내장해 쓸 수 있게 하는 기술입니다. 이동통신사의 통신 정보를 인식하고 사용자를 판별해 단말이 통신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해줍니다. 기존 유심 체계에선 물리적으로 단말 하나에 번호를 하나만 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e심을 유심과 함께 쓴다면 각각에 이동통신 번호를 하나씩 받아 이용할 수 있습니다. 굳이 스마트폰 단말을 두 개 들고 다니지 않아도 폰 하나만으로 업무용·사생활용 등 번호를 나눠 쓸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가족이나 연인 전용 번호를 따로 쓸 수도 있을겁니다.
지금까지 국내에선 e심 서비스가 사실상 전무했습니다. 스마트폰 대상 e심 서비스는 알뜰폰 기업 티플러스만 운영했고, 주요 통신 3사는 따로 요금제 등 상품을 두지 않았습니다. 아이폰의 경우 2018년 나온 아이폰XS 모델 이후 쭉 단말에 e심이 내장돼 있었지만 국내 이용자는 쓸 길이 없었던 이유입니다.
하지만 다음달부터는 얘기가 달라집니다. 삼성전자가 지난 10일 발표한 갤럭시Z폴드4와 갤럭시Z플립4가 e심을 지원합니다. 내수용 주요 스마트폰에 e심이 들어간 최초 사례입니다. 앞으로 나오는 주요 단말도 e심을 내장할 전망입니다. 010 번호 수요가 늘어날 기반도 그만큼 커집니다.
번호 고갈 우려가 나오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스마트워치와 태블릿 등 기존 e심이 쓰이고 있는 기기 활용이 많아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스마트워치, 태블릿 기기 등도 이동통신을 쓴다면 각기 010 번호를 발급받아야 하는 구조입니다.
수 년째 80% 초반 ‘제자리걸음’
실제는 어떨까요. 수치를 보면 ‘번호 고갈 위기’가 목전에 온 것은 아닌 분위기입니다. 통신 3사의 010 번호 자원 이용률은 2019년 약 82%, 올해 상반기 약 82%로 제자리걸음을 했습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도 한국경제신문에 “010 번호 이용률은 수년째 80% 초반”이라고 말했습니다. 통신사에 따라 수치가 조금씩 다르긴 합니다. 김영식 국민의힘 의원이 과기정통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SK텔레콤은 보유 번호량의 88.5%가 개통됐습니다. KT는 75.1%, LG유플러스는 77.4%가 개통 상태라고 합니다. 통신 3사는 010 번호 총 7392만개 가량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번호 이용률이 몇년째 비슷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통신업계에선 인구 추세를 가장 큰 요인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국은 2019년 말부터 사망자 수가 출생아 수보다 더 많아졌습니다. 유소년 인구는 2000년부터 20년 넘게 감소세를 타고 있습니다. 통신 서비스를 신규 가입하는 이들이 확 늘어날 수 없는 구조라는 얘기입니다.
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사망자나 은퇴자 등이 쓰던 010 번호를 다른 이용자가 가져가는 재사용 번호도 고려해야 한다”며 “번호도 ‘재활용’되는 자원이라 빠르게 고갈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스마트 디바이스도 010 번호 이용률을 크게 높이진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별도로 통신 상품을 가입하지 않은 채 와이파이를 통해서만 기기를 쓰는 이들이 많은 까닭입니다. 한 태블릿 모델이 100만개 팔린대도 이게 모두 010 번호 배정으로 이어지진 않는다는 설명입니다.
당국 등은 e심에 대해서도 비슷한 전망을 하고 있습니다. e심을 통해 010 번호를 쓰고 싶다면 기존 유심 번호와 별도로 새 통신 요금제에 가입해야 합니다. ‘1폰 2번호 2요금’이 된다는 얘기입니다.
‘제2회선‘을 주요 통신사의 저가 요금제나 알뜰폰 요금제에 가입할 수 있겠지만 여전히 비용 부담이 늘어나는 것은 사실입니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일부 이용자들이 통신 상품을 하나 더 가입하겠지만 모두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며 “e심 도입 후에도 번호 수요가 폭증할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