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도심 재개발은 묵은 난제다. 용도는 물론 용적률 제한 등 다양한 규제가 얽혀 있고, 관련 법까지 바꿔야 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취임 후 첫 방문지로 싱가포르를 택한 것은 이 같은 난제를 먼저 해결한 ‘롤모델’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는 각종 규제를 과감히 풀어 도심 고밀 복합단지개발을 일찌감치 정착시킨 도시형 국가다.
오 시장은 지난 30일 싱가포르 마리나원을 방문해 고밀 복합개발단지를 살펴보며 “낙후된 서울 도심을 유연하게 복합개발하겠다”고 밝혔다. 종로 세운지구와 용산 정비창 일대에 토지용도 규제를 완화하는 ‘비욘드조닝’을 적극적으로 적용하겠다는 구상이다. 비욘드조닝이 적용된 지역에는 용적률 1500%가 넘는 창의적 디자인의 초고층 건물이 들어설 수 있고 토지 용도도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다. 예컨대 세운지구에 들어설 복합개발 단지의 초고층 건물에는 운동장이 없는 학교와 수직정원 등이 동시에 들어가고 업무와 주거 공간이 함께 있어 엘리베이터를 타고 출퇴근하는 생활이 가능해진다.
비욘드조닝은 싱가포르의 토지개발 정책인 화이트사이트에서 착안한 제도다. 싱가포르가 1995년부터 도입한 도시계획 정책인 화이트사이트는 개발사업자가 별도의 심의 없이 토지 용도를 자유롭게 설정해 공간 효율을 극대화하고 다양한 기능이 담긴 건축물을 지을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인구 밀도가 높고 토지 이용이 제한적인 도심 환경에 최적화된 방식으로 꼽힌다.
오 시장이 이날 방문한 싱가포르의 세계적인 관광명소 마리나원은 화이트사이트를 적용해 고밀 복합개발에 성공한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1300%에 달하는 용적률과 주거·상업시설·녹지 등이 건물 한 곳에 어우러져 있다. 유선형의 독특한 건축 디자인도 또 다른 특징이다. 오 시장은 “마리나원의 우수한 건축물은 토지를 용도지역별로 구획해 개발하는 기존의 제도를 유지했다면 절대로 구현될 수 없었다”며 토지용도 규제 완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시는 서울판 화이트사이트 제도인 비욘드조닝을 도입하기 위해 ‘도심 복합개발특례법’ 제정에 나설 계획이다. 현재 국토계획법에 따르면 ‘입지규제최소구역’으로 지정되면 토지 용도를 일정 부분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다. 하지만 세부 규정이 제한적이라 비욘드조닝을 완벽하게 도입하기 위해선 국토법 세부 규정을 완화하거나 특례법과 같은 별도법을 제정해야 한다.
시는 지난 6월 ‘구도심 복합개발 TF(태스크포스)’를 구성해 특례법 제정 필요성과 사업 방식, 공공성 확보 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세운개발이나 용산개발이 활성화되기 위해선 규제 완화 부분이 절실하기 때문에 단기적으론 입지규제최소구역 지침 개정 정도는 검토해볼 수 있다”고 했다.
오 시장은 “도심 복합개발은 직주근접 주택 공급으로 출퇴근 시 발생하는 교통혼잡과 환경오염을 줄일 뿐 아니라 도시철도망 건설에 투입되는 천문학적 예산, 베드타운 양산 등 우리 모두가 부담해야 하는 사회적 비용을 줄인다는 측면에서 단순한 지역개발과는 차원이 다르다”며 “중앙정부와 협력해 도심 복합개발을 실효성 있게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싱가포르=장강호 기자 callm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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