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으로 암 조기진단
액체생검은 암세포에서 흘러나온 DNA 조각(ctDNA)을 피 속에서 검출하는 방식이다. 핵심은 ‘조기진단’이다. 종양이 작아 스캔으로 잡아낼 수 없다 해도, 혈액 속의 ctDNA만 확인된다면 극초기 암도 진단할 수 있다. 환자 몸 속의 종양을 떼어내 검사하는 기존 조직검사에 비해 검사시간은 물론 검사비용을 크게 낮출 수 있어 차세대 진단기술로 꼽힌다.국내 기업 중 가장 속도가 빠른 곳은 아이엠비디엑스다. NGS 기반 암 진단용 액체생검 플랫폼 ‘알파리퀴드’를 서울대병원, 서울성모병원, 고대안암병원, 강남세브란스병원 네 곳에 공급하고 있다. 3~4기 암환자 진단에 활용 중이다. 동반진단법(CDX) 액체생검은 기존에도 쓰였지만 국내 기업이 개발한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NGS) 기반 액체생검 플랫폼이 환자 진단에 사용된 첫 번째 사례다. 서울대병원 기준 이 회사 진단제품의 처방 건수는 지난해 5월 5건에서 올해 6월 64건으로 1년 사이 12배 이상 증가했다. 회사 관계자는 “문제 지점을 하나씩 확인하는 CDX와 달리 NGS 플랫폼은 수백, 수천 개에 달하는 표적을 동시에 찾아낼 수 있다”며 “사전에 인지하지 못한 암까지도 잡아내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아이엠비디엑스 플랫폼은 서울대병원 등 64개 기관에서 조건부 선별급여 적용을 받는다. 이 제품으로 암진단을 받으면 건강보험 혜택을 주는 방식이다. 가격 경쟁력도 갖췄다. 가던트헬스 제품 가격(약 3500달러)의 5분의 1 수준인 건당 75만원이다. 이 회사는 오는 10월께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정식 허가를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30兆 시장 잡는 경쟁 치열
국내 유전체 분석기업들은 1, 2기의 초기 암도 잡아내는 진단 플랫폼을 개발하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3~4기 환자 혈액 속에 떠다니는 ctDNA는 전체 DNA의 10%가량이지만 발암 초기 단계에선 이 비율이 0.1%로 줄어든다. 그만큼 기술장벽이 높은 분야다.분자진단 전문업체 젠큐릭스는 액체생검 간암 조기진단 검사 키트인 ‘헤파eDX(HEPA eDX)’와 ‘콜로eDX(COLO eDX)’를 개발 중이다. 임상 결과는 내년께 나올 전망이다. 2024년까지는 간암뿐 아니라 대장암 관련 제품(HEPA eDX)도 출시하는 것이 목표다.
EDGC는 액체생검 암 조기진단 기술인 ‘온코캐치’ 상용화를 추진 중이다. 싸이토젠은 순환종양세포(CTC)를 기반으로 폐암·유방암 동반진단 키트를 개발하고 있다. 암 조직에서 떨어져 나온 CTC를 손상 없이 분리해내는 기술을 활용한다.
액체생검 연구에 가장 많이 투자하고 있는 나라 중 하나는 미국이다. 미국국립보건원(NIH) 국립암연구소는 2019년부터 연구 목표 중 조기 검진 분야 1순위로 액체생검을 꼽았다. 바이오업계에 따르면 최근 NIH는 연구 활성화를 위해 전 세계 액체생검 기업들에 진단 플랫폼 샘플을 요청했으며, 몇몇 국내 바이오 벤처도 NIH에 플랫폼을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JP모간, IVD마켓 등에 따르면 액체생검 시장 규모는 2027년 2000억달러(약 230조원)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