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7월 22일 10:37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언어가 생각의 체계를 규정한다는 것은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생각을 정리하고, 상호 간에 정보를 교환하고, 개인이 외연에 대한 관념과 개념을 정립하는 기본도구가 언어이기 때문에 생각과 언어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이견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물리적 공간과 사고 체계도 어떤 연관이 있을까? 최근 사회적으로 작은 파문이 일고 있는 모 대학의 소송 사건이 하나 있다. 요약하면 청소 노동자들이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집회를 하면서 발생하는 소음이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하고 있으며, 학생들이 권리 회복을 위해 업무 방해와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노동자들을 고소 고발한 사건이다.
대학 그것도 명문사학의 학생들, 청소 노동자로 대변되는 사회적 약자, 타인의 권리 존중과 개인의 자유 침해라는 논쟁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이 충족되어 다양한 토론과 비판이 형성되고 있다. 세부적인 내용은 이달 초 한국경제신문에 게재된 <뜨거운 감자된 대학생의 '청소 노동자 소송'> 기사를 참조하면 될 것이다.
이런 기사에서 거의 예외없이 나오는 내용이 열악한 휴게 공간 이슈이다. 청소라는 것이 열악한 환경을 쾌적하게 변경하는 업무이니 근로 환경이 본디 근로자에게 우호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휴게 공간은 조금 다른 문제다. 해당 대학의 신촌캠퍼스는 연면적 95만2750㎡로 청소 노동자들을 위한 샤워시설과 휴게 공간이 물리적인 한계로 설치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연간 교비회계 규모가 2020년 이미 1조원을 상회하는 대학에서 재원 부족이 그 이유가 되지도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사악한 대학재단이 악의적으로 청소 노동자들에게 의도적으로 열악한 환경을 강요하는 것인가?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뉴욕의 초고층 오피스빌딩의 주요 트렌드 중의 하나가 개별층의 높은 층고이다. 일정 수준까지는 층고가 높아질수록 개개인의 창의력이 활성화된다는 다양한 연구결과로 인해 월등히 높은 임대료에도 글로벌 선도 기업들이 층고가 높은 빌딩을 선호하는 현상이 감지되고 있다. 법무법인, 초대형 IT 기업, 헤지펀드/PEF 등 고액의 사무실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는 임차인을 유치하기 위해 최근 건축된 건물들은 1층이나 리셉션뿐 아니라 건물 전층의 층고를 높게 설계하고 있다.
서울의 저임금 청소 노동자와 뉴욕의 고임금 사무직을 일직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이 불가하다는 일차원적 시각을 벗어나 보면, 대학의 청소 노동자에게 휴게 공간이 정당하고 합리적으로 주어지지 못하는 이유는 청소 노동자를 그 공간에서 이뤄지는 서비스의 일부로만 판단하고, 해당 공간의 거주인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해당 공간의 사용에 대하여 금전적 대가를 지불하는 임차인 등 사용자만을 해당 공간의 거주인으로 정의하는 진부한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예컨대 백화점의 거주인은 거주 기간의 차이는 있지만, 매장 입점업체 직원, 쇼핑 고객, 제품의 배송 관련 인력, 청소를 포함하여 시설 관리 인력까지를 포함해야 한다. 조금 더 확장하면 백화점 앞을 지나가는 행인, 더위를 식히거나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에 문자 그대로 잠시 스쳐 지나가는(Stop-by) 사람들도 모두 거주인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다. 단순히 철근콘크리트를 조적하고 공간을 구획하는 공간 설계가 아니라 그들 모두를 거주인에 포함해서 쇼핑을 위한 동선 관리라는 핵심 목표와 거주인 모두를 배려하는 심도 있는 고민이 필요한 것이다.
몇 년 전부터 마스턴투자운용은 바로 이 공간의 거주인 모두를 배려하고 그들이 공간에 머무르는 시간 동안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방안에 대하여 근본적인 고민을 계속하고 있다. 그것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는 길이며, 동시에 해당 공간의 가치를 가장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마스턴투자운용이 LEED(Leedership in Energy and Environment Design·미국 그린빌딩위원회가 개발·시행하고 있는 친환경 건축물 인증제도)뿐 아니라 GRESB와 Well HSR(Health-Safety Rating) 등 다양한 ESG 인증에 관심을 쏟는 맥락도 이와 무관치 않다.
다시 청소 노동자 이슈로 돌아가 보자. 청소 노동자를 해당 공간의 이용자로 정의하고 합리적인 공간을 배정해보자. 법률과 규제에 의한 강제는 의미가 반감한다. 그것은 규칙에 대한 준수일 뿐 해당 공간 거주자로의 진정한 포용이 아니기 때문이다. 청소 노동자의 휴게 공간을 대학의 교직원 수준 이상으로 배정하고 그 공간에 대해서도 주기적으로 예산을 배정하여 시설물 개선의 범주에 포함시켜보자.
언어 못지않게 공간이 사고를 규정하는 영향력도 작지 않다. 고소한 대학생을 비난하거나 청소 노동자 시급 몇 백원을 인상하는 것보다는 상호 간의 존중과 포괄적 해결의 접근법이 훨씬 유용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모든 것은 돈과 공간의 이슈라고 반박하기에는 공간과 재정이 과하게 충분하다. 하물며 영리 기업들도 공간에 대한 포용력과 사회적 책임을 고민하고 있는데, 사학재단인 대학이 이를 함께 고민하고 실천에 옮기지 못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정리=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