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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화의 여신'은 오만과 편견의 틈을 파고든다 [고두현의 문화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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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불화(不和)의 여신’이 화근이었다. 불화와 다툼을 관장하는 여신 에리스는 신들의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해 화가 났다. 그래서 황금 사과에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는 글을 새겨 하객 사이에 던졌다. 이를 본 여신들은 서로 자기 것이라고 다투기 시작했다. 우여곡절 끝에 제우스의 부인 헤라, 전쟁과 지혜의 여신 아테나,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최종 후보로 뽑혔다.

세 여신은 인간 중에서 가장 잘생긴 남자인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에게 심판받기로 했다. 파리스 앞에 도착한 이들은 저마다 달콤한 말로 그를 꼬드겼다. 헤라는 세계의 왕이 되게 해주겠노라고 했고, 아테나는 승리의 지혜를 주겠다고 했다. 아프로디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주겠다고 했다. 파리스는 고심 끝에 아프로디테를 택했고, 마침내 최고의 미인인 헬레네를 아내로 얻었다.
'헬레네=해상 무역권의 상징'
그런데 하필이면 헬레네가 유부녀였다. 그것도 스파르타 왕의 부인이었다. 졸지에 아내를 뺏긴 스파르타 왕은 격분해서 자기 형인 미케네의 왕과 손잡고 트로이로 쳐들어갔다. 이것이 ‘트로이 전쟁’이다. 트로이의 반격이 의외로 강해서 전쟁은 10년 넘게 승부가 나지 않았다. 그러자 그리스는 전략가 오디세우스의 제안으로 거대한 목마를 만들어 트로이 성 앞에 두고 철수했다.

트로이 사람들은 목마를 성으로 들이면 승리할 것이라는 거짓 예언을 믿고 성으로 들였다. 이들이 승리의 잔치를 벌이고 취한 사이에 목마 속에서 기회를 엿보던 오디세우스와 병사들이 밖으로 나와 트로이를 함락하고 헬레네를 데려온다.

이 전쟁의 표면적인 원인은 트로이 왕자 파리스가 스파르타 왕비 헬레네를 데려간 데 대한 그리스인들의 분노다. 고대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도 이런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그러나 트로이 쪽에서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역사》를 쓴 헤로도토스의 기록에 따르면, 원래 서아시아의 페르시아인과 남유럽의 그리스인 사이에는 잦은 납치 사건이 벌어졌다. 파리스가 헬레네를 데려온 것은 이런 납치 사건들에 대한 일종의 보복이었다. 헬레네를 돌려달라는 요청도 이전 납치 사건의 사과나 배상이 없었기에 무시했다는 것이다.

헬레네에 대한 또 다른 해석도 있다. 그 무렵의 ‘해상 무역권’을 헬레네라는 아름다운 여성에 비유했다는 설이다. 그리스의 수많은 도시국가들이 연합해 10여 년간 당대의 강국인 트로이와 맞붙어 싸울 동기가 충분했다. 훗날 아테네가 그리스권 도시국가 중 최강 반열에 오른 것도 해상 무역 덕분이었다. 실제로는 경제적 이권 때문에 싸웠지만 후대에 이 전쟁 이야기를 더 재미있게 만들기 위해 헬레네라는 캐릭터를 등장시켰다는 것이다.

당시 그리스 함대가 트로이를 공격하기 위해 건넌 바다가 에게해다. 그리스와 튀르키예(터키) 사이에 있는 에게해는 파도가 잔잔하고 물이 맑다. 산토리니 등 아름다운 섬이 즐비하다. 이들 섬은 대부분 그리스 영토에 속해 있다. 에게해란 이름도 고대 아테네의 왕 아이게우스(Aegeus)에서 유래했다.

이런 ‘그리스의 바다’ 에게해는 15세기 이후 400년간 오스만튀르크에 정복된 ‘상실의 바다’였다가 19세기 독립 때 다시 찾은 ‘귀환의 바다’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리스는 튀르키예와 신경전을 자주 벌였고, 1차 세계대전 직후엔 전면전까지 치렀다. 2020년에는 그리스의 배타적경제수역에서 튀르키예 시추선이 천연가스 탐사 작업을 벌이다 양국 해군이 정면충돌 직전 상황까지 가기도 했다.
'에게해' 등록상표 놓고 충돌
최근 들어서는 ‘에게해’ 상표 등록을 놓고 다시 부딪쳤다. 튀르키예가 유럽연합(EU)의 지식재산권 담당 기관에 ‘튀르키예 에게해(Turk Aegean)’란 용어의 상표 등록을 마치고 관광 홍보 캠페인을 벌이자 그리스인들이 “우리 바다와 역사를 빼앗겼다”며 들고일어난 것이다.

따지고 보면 튀르키예의 조상인 튀르크(돌궐)족은 트로이 전쟁으로부터 약 2500년이 지난 후에야 지금의 튀르키예 땅에 들어왔다. 그러니 에게해의 연고권을 주장하기 어렵다. 하지만 정치라는 불청객이 끼어들면 사정은 완전히 달라진다. 그리스는 오는 9월 총선을 앞두고 이 문제를 이슈화하고 있고, 튀르키예도 내년 대선을 염두에 두고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둘 다 물러서지 않을 태세여서 ‘바다 분쟁’이 쉽게 해결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에게해를 둘러싼 역사의 페이지를 거꾸로 넘기다 보면 기원전 12세기의 트로이 전쟁과 그 시발점인 ‘불화의 여신’까지 가 닿게 된다.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던진 황금 사과는 권력이라는 이름의 독약이다. 불화는 다툼과 전쟁의 씨앗이자 서로 “내가 최고”라고 외치는 오만과 편견의 뿌리다. 다툼은 늘 오만과 편견의 옷을 입고 찾아와서는 조그마한 틈새도 놓치지 않고 싸움의 불씨를 밀어 넣는다.

그래서 오만과 편견은 파멸을 자초하는 폭탄이다. 그 뇌관 중 하나가 ‘최고’라는 수식어다. 루벤스 그림 ‘파리스의 심판’을 보면 여신들이 저마다 상징적인 이미지와 함께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고 있다. 화려한 헤라의 발밑에는 공작새, 아테나 곁에는 방패와 올빼미, 아프로디테의 뒤에는 에로스가 앉아 있다. 이들 중 ‘최고의 미(美)’를 선택해야 하는 파리스도 결국 불화의 덫에 걸려 전쟁을 자초하고 말았다.
정치싸움에 멍든 우리 사회는
트로이 전쟁 당시 그리스 사회의 가장 큰 죄악은 신과 자연의 섭리에 대한 ‘휴브리스’(오만)였다. 이는 지나친 자신감에 빠져 오만한 태도를 보이다가 파멸에 이르는 것을 뜻한다. “포르투나(행운)보다 휴브리스(오만)”라는 격언도 마찬가지다. 영웅을 포함한 모든 인간은 행운으로 인한 몰락 이전에 오만으로 잘못된 발을 디딤으로써 자멸한다는 뜻이다.

‘파리스의 심판’과 에게해 분쟁의 역사를 살피다가 오랜만에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의 명문을 떠올렸다.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없게 하고,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한다.’

지금 나는 어떤가. ‘불화의 여신’이 던진 황금사과에 정신이 팔려 눈이 멀지는 않았는가. 온갖 정치 갈등으로 삐걱대는 우리 사회는 또 어떤가. 그리스 신화 속에 나오는 경고음 사이렌(siren)이나 위대한 스승(mentor)도 없이 모두가 어둠 속에 길을 잃고 방황하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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