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 예보 절반은 틀려
한국경제신문이 기상청 자료를 토대로 전수 분석한 결과, 지난해 기상청이 비가 온다고 예보했을 때 실제로 비가 오지 않은 비율(비예보 오보율)이 45%에 달했다. 전년(40%)에 비해 5%포인트 높아진 수치다. 기상청 247개 강수 관측지점 예보 데이터와 실제 강우가 쏟아진 날을 비교 분석한 결과다. 강수 유무는 3시간 내 0.1㎜ 이상 강우 관측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했다.지속되는 과잉예보는 산업계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 충남 서산에서 9900㎡에 상추 농사를 하는 강모씨(54)는 지난 6월 중순 폭우가 쏟아진다는 기상청의 예보에 상추를 모두 수확했다. 실제 강수는 사흘 뒤에야 시작됐다. 상추는 생육기간이 짧아 하루만 일찍 따도 상품가치가 크게 하락한다. 강씨는 지난해 초여름 상추 수확으로 3억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올해는 2억원에 그쳤다. 강씨는 “상추 농사는 생육기간이 조금이라도 차이가 나면 상품가치가 달라지니 하루라도 더 키워보려 온갖 노력을 한다”며 “기상청이 비가 온다고 했다가 안 왔을 때 피해는 생각 안 하는지 모르겠다. 무책임하게 예보를 남발하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경기도에 있는 A골프장은 지난달 말 예약 취소 사태를 겪었다. 기상청이 이달 5일과 6일 비가 올 것이라고 예보하면서다. 하지만 당일 하늘은 맑았다. 양일간 40% 수준의 매출 감소가 있었다는 게 골프장 측의 설명이다. 이 골프장의 하루 매출은 1억원 수준이다. A골프장 관계자는 “5일과 6일 하루 전에서야 비가 오지 않는다는 예보로 바뀌었다”며 “부랴부랴 저렴한 가격으로 예약 시간대를 메웠지만 매출 타격은 감수해야 했다”고 말했다.
강원 강릉에서 호텔 공사를 하고 있는 B건설회사는 6월 중순 지속된 과잉예보로 인력 손실이 매우 컸다고 토로했다. 건설현장에선 폭우가 예상되면 배수 기계 준비, 대형 천막 설치 등 일할 거리가 늘어나 인력을 1.5배로 대기시켜야 한다.
B건설사 관계자는 “6월 중순 비가 온다고 했다가 안 온 날이 수도 없이 많았다”며 “이런 날 하루 단위로 고용하는 인부들을 뽑아 놓고 놀려야 해서 피해가 막심했다”고 설명했다.
“정교한 예보 선행돼야”
기상청 관계자는 “예보를 하지 않아 발생하는 피해를 막는 게 우선이라 과잉예보가 불가피하다”고 해명했다. 실제 기상청은 비가 내렸을 경우 사전에 예보를 한 확률인 ‘강수 맞힘률’을 주요 수치로 관리하고 있다. 예보를 공격적으로 할수록 이 수치가 오르는 구조다. 기상청에 따르면 강수 맞힘률은 지난해 3분기 62%, 4분기 60%, 올 1분기 71%로 꾸준히 오르고 있다.이상 기후 현상이 많아지는 대기 환경도 오보율 상승의 원인으로 꼽힌다. 지구 온난화 등 기후변화로 대기 중 수증기가 급증하면서 대기가 불안정해지고 예보 난도가 높아지고 있다. 기상청 관계자는 “시간당 100㎜가 넘는 폭우, 장마 정체전선의 장기화 등 최근 이상 기후 현상이 많아지는 추세여서 예측이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공격적인 예보를 한다고 해도 예보 시스템을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 과잉예보는 줄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2020년 상용화된 국내 수치예측 모델 ‘킴(KIM)’ 예측성능은 유럽연합(EU), 영국, 캐나다 등에 이어 세계 6위 수준(2020년 5월~2021년 10월, RMSE 예측성능 기준)이다. 다만 킴 개발 고도화 팀을 한시적으로만 운영하는 등 성능 확대를 위한 노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기상학계 관계자는 “EU는 예보 시스템 ECMWF 고도화를 위해 영구 상설 관리팀을 구성하는 등 지속 노력해왔다”며 “킴 고도화 팀은 해체를 눈앞에 둔 임시 팀으로, 정부의 관련 노력이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구민기 /남정민 기자 kook@hankyung.com